한국은 1만년 역사 대국 - 황하문명의 주인공

우리의 고대 역사기록에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다름없는 내용의 창세(創世)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밀의 마고와 마고성〔麻固城:고마성-곰- 검과의 연관성, MAG : Sumer 어로 발근(發根)한 남성기(男性器), GU 또는 GUR : Sumer어로 산(山), 언덕, hill〕이야기가 나오고(지리산에도 마고할미 전설이 있음), 마고가 땅덩어리와 인류를 창조하는 이야기〔에덴동산 기록과 너무 일치하고 조리가 정연하므로 구약의 원류(源流:모델)가 아닌지 의심될 형편임〕, 한단고기 태백일사의 삼신오제〔三神: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 五帝:흑·적·청·백·황→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음양오행의 원천이 됨〕의 우주창조와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를 주관(主管)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역사가 1만년(9200년)이라는 거짓말 같으면서도 진실인 역사적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태고에 음양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홍몽한 채 오래 닫히어 있었다. 천지는 혼돈하고 귀신도 매우 슬퍼하고… 물과 불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 밀치기 수 백만 년이었다. 上界에는 마침 한 큰 主神이 있었으니 桓因이라 했다(북애자 조판기 서두에서).

 이제부터 여러분은 ‘한민족사는 반만년 역사가 아니고, 우리 한국은 1만년 역사 대국이다’라고 개념을 바꾸십시오. 즉 금년(2001)은 한기(桓紀) 9198년(4334+1565+3301-2이요, 개천(開天) 5898년(4334+1565-1)이요, 단기(檀紀) 4334년(2001+2333)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한단고기(桓檀古記)라는 사서(史書)를 읽어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한님(桓因)의 한국(桓國)은 7대 3301년, 한웅(桓雄)의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18대 1565년, 단군의 고조선은 47대 단군에 2096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임(안파견:아버지)은 파밀의 천산(天山)일대에서 ‘한’나라〔桓國〕를 열어 7대 한임에 걸쳐 3301년간 다스리는 중에 바이칼 호수 주변으로 중심지를 옮겼고(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12개국 통치), 마지막 한임인 7세(世) 단임〔檀因:배달임:지위리한인(智爲里桓因)〕의 아들 한웅은,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신시(神市:검벌)를 열어 배달이라 하였고, 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한웅, 즉 치우천황(治尤天皇)은 황하 일대를 평정하여 만주와 중원(中原)일대를 청구(靑丘)라하여 청구 땅을 넓혔으며, 마지막 한웅인 18세 단웅〔檀雄:배달웅:거불단한웅(居弗檀桓雄)〕의 아들 단군 왕검(檀君王儉)께서 백산(白頭山) 단목(檀木)아래서 탄생하신 후 아사달(阿斯達:아시 땅, 처음 땅)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습니다.

단군이 조선을 개국하신 때가 서기 전 2333년, 서양 역사학자들과 그 아류인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하면 신석기시대, 중국의 소위 삼황오제〔복희씨, 여와씨, 신농씨,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 : 전부 동이겨레의 자손이며, 자유중국 교과서에서는 황제헌원을 한족(漢族)의 시조로 가르치고 있음〕의 요순시대로서 황하 문명의 여명기로 보고 있습니다. 인도는 인더스 문명시대, 메소포타미아는 바빌로니아 전에 우르(Ur)·아카드 왕조시대, 에집트는 멤피스 시대로 대피라미드 건설기였고, 아메리카 인디안의 연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마야문명 AD 4세기, 잉카문명 AD 16세기).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요즘 쓰이고 있는 세계사 연표에 따른 것인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역사적·고고학적·진화론적·유물사관적 시대 구분과 문명구분의 연표(年表)는 다시 말씀드리면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니, 부족·추방·국가사회시대니, 원시·노예·봉건사회니, 전차축·차축 문명시대니 하는 시대와 연대 구분은 전부 서양 학자들과 그 아류(阿流)인 동양(日本)학자들이 만들었으며, 이때까지 세계의 역사는 서양 사가(史家)들의 눈으로 본 입장에서 기록된 백인 우월주의 역사관입니다.

우리가 교육받기로는 세계 4대문명인 황하·인더스·메소포타미아·나일강 문명 중에 황하 문명이 가장 늦은 문명으로 나오고, 백인들의 연고지(緣故地)에서 가까운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의 애급 등 열대문명이 빠른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고조선 전후의 동이·예맥 문명권이 아예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고조선에 철기문화가 시작된 것도 춘추전국시대(BC 400-200)에야 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훨씬 빠릅니다. 현대 문명은 서양 백인들의 기독교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현대의 여러 학문과 과학을 발달시킨 것이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공헌이 큰 것은 부정 못 할 사실이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 역사관도 재고될 때가 온 것입니다.

사실로는 황하문명이 가장 늦은 문명이 아니고 가장 오래된 문명이며, 황하 문명의 모태는 송화강(松花江)문명으로서 이 송화강 문명권이 세계 문명의 기원이라는 것이 알려질 날이 멀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북아 문명권(동이·예맥 문명권, 송화강 문명권, 북황해 문명권, 대황하 문명권)에 있어서 이때까지 적용되던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니, 전차축·차축 문명시대니 하는 시대구분법은 재고되어야 하며 따라서 당연히 이들이 기준이 된 세계사의 고대사 연표(年表)는 전반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의 인류 문명사는 12000년 전까지만 기록된 역사이며, 그 이전은 막연히 원시시대·구석기시대·선사시대라는 말로써 표현하고 있을 뿐 해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신대륙을 비롯하여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바다 밑이나 지상이나 지하에 수 없이 많은 불가사의한 고도의 문명 유적들이(어떤 이들은 이것을 우주문명이라고도 하는데) 풀 수 없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초 인류 문명에 대한 것까지도 해명하기 위하여 세계의 많은 탐험가들과 고고학자·역사학자·신학자들이 도전을 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사학계는 엄연히 있는 기록도「재야사서(在野史書)」〔강단 학자들이 사용하는 관학파사서(官學派史書)에 대칭되는 용어〕라 해서 신빙성을 의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구애받지 말고, 과감히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 용기있게 발표함으로써 잘못 알고 있는 세계역사학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서양 사람이나 일본 사람들이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물 건너 일본 학자들은 이미 인정하고 파헤쳐 주고 있음), 우리 자신이 발벗고 나서서 한국정사(韓國正史)와 아시아 비사(秘史)를 들추어내 발표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동양사는 다시 써져야 하고 세계사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아시아의 비사뿐 아닙니다. 인디안 문명의 뿌리는 밝혀져 있습니까? 미대륙은 컬럼버스가 발견한 것이 아닌데도 서양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 스페인의 지중해 해안도시 바셀로니아는 1992년도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 해는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500주년이 된다. 그래서 바셀로니아 市는 컬럼버스의 고향이요, 출생지로서 올림픽과 함께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하자 남미의 각 국가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남미 각 국의 住民 메스티조인들은 인디안과 스페인의 혼열인종이지만 스페인은 정복국가요, 남미 각 국은 피정복, 피지배 민족이었던 것이다. 컬럼버스는 금을 찾아 남미로 갔던 것으로, 그는 “Where the gold was born?”하고 주민들에게 묻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은 컬럼버스가 중남미의 그 뛰어난 인디안 문명을 잿더미로 만든 것이다.   또한 수 천년 간 구대륙에서 분리되어 삶으로써 구대륙의 각종 질병에 면역성이 없던 그들은 이들 백인들로부터 전해진 구대륙의 각종 질병에 감염되어 씨도 없이 죽어갔다. 100만 명 부족 중에 만 명 정도만이 살아남을 정도이다. 이러니 인디안 문명과 인종을 멸망시킨 스페인 정복자의 축하행사에 인디안의 후손 국가들이 아무 조건없이 기꺼이 참석했겠는가? 이래도 신대륙을 칼럼버스가 발견했는가.

 단군조선 개국 연대(年代)를 비교하다가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만, 하여튼 우리가 단군을 우리의 국조로 믿고 숭상하는 것은 신화가 아니고 당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또한 단군 전에 한국(桓國)·배달국·청구국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기회가 나는 대로 『한단고기』라는 역사 책을 한 번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사료적(史料的) 신빙성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이 신·구약 성경을 읽고 유대인이 구약과 탈무드를 읽듯이, 한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가치 있는 책입니다. 혹자는 이 책을 천민심서(天民心書)라, 천민심훈(天民心訓)이라, 민족의 경전(經典)이라 하였으며, 또한 한·일 양 민족의 창세기(創世記)이며, 만몽(滿蒙)에서 중국 및 서역(西域)까지 비추어 주는 동양의 비사이며 지보(至寶)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중근세(中近世) 천년을 제외한 9천년(8200년)의 역사가 광대한 대륙을 무대로 한 대륙의 역사로서, 그 무대는 파미르·천산·알타이·시베리아·몽고·만주·중국대륙·한반도·일본 등이었습니다. 한임의 한국(桓國)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웅의 배달국·청구국시대만 해도 동북아대륙과 양자강의 동정호 이북 전 대륙이 우리 동이(東夷)겨레의 땅이요, 그 땅의 동이인들 그들이 또한 동아문명의 창시자였습니다. 중국의 사학자 ‘서량지(徐亮之)’라는 사람은 자신의《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라는 저서에서 “은(殷)·주(周)시대 때 동이족의 활동범위는 산동반도·하북성(북경)·발해연안·하남성·강소성(상해)·안휘성·호북성·요동반도·조선반도였으며, 그 활동 중심지는 산동반도였다”고 말했읍니다. 은(殷)은 우리 고조선보다도 1000여 년 뒤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동이 문명에 대해서 《배달 동이는 동이 겨레와 동아문화의 발상지》라는 저서를 내신 안호상 박사는, “동이민족이 이때까지 중국 문명으로 알았던 황하 문명의 주인공이었으며, 황하 문명은 바로 동이 문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지금 사실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우리 동이보다 1500-2000년 늦게 중원땅에 들어선 민족이며, 동이족이 원래 서토(西土), 곧 중국 평원의 선주민(苗族)이었습니다.

여기서 중국민족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동이족의 정체가 들어 날 것입니다. 원래 한족(韓族)이라는 것이 따로 전래(傳來)되어 내려온 민족이 아니고 중국 서부 내륙에서 부족사회를 거치면서 기름진 동쪽으로 이동 도중〔신시배달 중엽 BC 3000여년?경부터 고조선 말엽 BC 400여년(?)경에 이르기까지〕, 수개 족속이 복합되고 마침내 동이 지역까지 들어와서 동이와도 복합되어 나중에 한족(漢族)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족(漢族)의 중국이라는 나라는 진(秦)시황 때에 와서야 (BC 221) 복속민족(復屬民族)국가로 성립되어 U.S.A.와 같이 동이족 중심의 합중국(合衆國)이 나타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유사 이래 양자강 이북 황하 일대 평원지역에 선주(先住)하여 있던 동이족은, 저 중국 역사의 삼황오제 시대를 지나 하(夏)·상(商:殷)·주(周)를 거쳐 춘추전국시대의 제(齊)·조(趙)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BC 221) 이들은 전부 동이족의 나라입니다. 진시황 자신도 동이족입니다.

그것은 사기(史記)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사 이래 진시황 때까지 중국 역사는 우리 동이가 중국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하여 주인이 된 후에는 동쪽에 있는 같은 종족을 또 동이라 하고 자기들은 중국인이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이 동이(東夷)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대로 오랑캐라는 나쁜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질 인(仁), 큰 활〔大弓〕이라는 좋은 의미의 뜻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중국 문헌 속에는 우리 동이에 관해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나, 소위 하화계(夏華系)란 종족에 대해서는 한대(漢代) 문헌에 와서야 나타납니다. 하지만 안호상 박사는 ‘하화계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동이계와 같은 구이(九夷)등이 외곽에서 중앙(황하 중하류)으로 일부씩 모여 들어 원래 있었던 다른 종족과 합해져 지금의 하화계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쪽의 하화계가 형오계·백월계(越薔族, 흰머리아, 곤륜산맥 등 담을 넘어왔다 해서 월장족)와도 혼합되면서, 서쪽에서 익힌 철기문화를 가지고 동쪽 대지(大地)로 이동하면서 하화계와 선주 동이계 사이에는 빈번한 충돌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서로 흡수·동화되면서 동이족만의 사회가 점차 해체되고 동화되어 진시황때에 와서는 결국 동이족만의 국가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족이라는 족속은 20개가 넘는 서로 다른 민족이 모여서 된것이요, 오늘날도 동이족은 황색인종의 합중국인 U.S.C(United States of China·支那合衆國)의 주역(主役)민족으로서, 백색인종의 합중국인 U.S.A.(美合衆國)의 앵글로 색슨(Anglo Saxon)처럼 U.S.C.를 형성한 원료나 재료, 그 자체가 된것입니다. 그런데 한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후한(後漢)이 멸망할 당시의 문헌(AD 220년)에 처음 나오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역사학자 임혜상(林惠祥)같은 이는 중국역사를 서술하는데 필요한 한(漢)나라 앞시대를 하화계(夏華系)라 하고, 또 한(漢)나라 뒷시대를 한(漢)족이라 정의하여 부르고 있읍니다만 하화계란 그 자체가 허황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漢)이란 음(音)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고조선에 삼한 관경〔三韓管境:진한, 변(弁) 또는 번한(番韓), 마한〕이 있었고 나중에 반도 내에도 삼한이 있었듯이 나라 이름과 종족 이름을 스스로 ‘한’이라고 결정한 것은, ‘한’이 동이-예맥에서 계승된 이름으로서 고유한 우리 민족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동이’나 ‘예맥’이라는 이름은 중국이 우리에게 붙혀준 이름인데 반하여, ‘한’은 우리가 우리들 스스로 정의(定意)한 이름입니다. ‘한’은 고유한 우리의 말로서 그 유래가 멀고도 사용 범위가 넓었는데, 한임의 ‘한’나라〔桓國〕시대로부터 동이와 북몽골족이 살던 모든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인 말이 ‘한’이었던 것입니다. ‘한(韓)’이나 ‘한(漢)’은 이미 있던 우리 고유의 ‘한’음의 표기로서 우리 동이족인 한족(韓族)이 살던 지역, 한족(韓族)의 나라에서 한족(韓族)을 근간(根幹)으로하여 새로운 복합족속이 태어났으니 ‘한’이라는 음 그대로 ‘한족(漢族)’이 된 것입니다. ‘한자(漢字)’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글인 것입니다〔桓字→漢字→韓字〕.

신시 배달국의 5대 태우의 한웅(太虞儀桓雄·BC 3500)은 열두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6대 다의발(多儀發)한웅이요, 막내가 태호 복희(太伏犧)이며, 그밑에 딸이 여와(女)입니다. 왕자 태호복희가【진단(震檀)땅에서 출생한 후 청구와 낙랑을 지나 배달나라의 서녘땅인 하남성 진 땅에 옮아가서 풍이족의 후손이므로 성을 풍씨라하고 이름을 한밝산의 신선이란 뜻으로 한밝〔太호〕이라 하였음. 그 자손들이 춘추시대까지 번창하였음】한자(桓字)를 고안하여 썼는데 그것이 한자(漢字)로 표기된 것입니다. 주역(周易) 역시 한역(桓易)인 복희역〔義易〕에서 나온것인데, 근세(近世)에 김일부(金一夫) 선생의 정역(正易)으로 완성됐습니다.

오늘날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표기를 바꾼것도 그 근본이 ‘한’, 곧 동방(東方)에서 유래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즉 동방지역은 천지가 비롯된 곳입니다〔東方之域 天地之所始生也:黃帝內經素問〕. 천지의 모든 인간문화가 시발한 곳은 동방지역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동이겨레가 ‘한족(漢族)’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단(丹)이라는 소설책의 주인공이신 우학도인 권태훈 옹(大倧敎 前 總典敎)께서는 현 중국의 반(半)정도는 우리 백두산 민족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양자강 이북의 족속들은 거의가 다 백두산족(白頭山族)이라고 하셨습니다. 중국땅 자체도 우리 신시나 고조선에서 부를때에는 서토(西土)·서국(西國) 또는 ‘버금중(仲)’자 ‘중국(仲國)’이라 불렀습니다. 그것도 ‘가운데 중(中)’중자가 아니고 ‘버금중(仲)’중자였습니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우리의 중심부인 만주지역보다 서쪽에 위치해 있으니 서토·서국이라 했고, 다른지역과 중개하는 위치에 있으니 ‘버금중(仲) 중국’이라 불렀습니다. 그후 중간(中間)땅이라하여 ‘가운데 중(中) 중국’이라 부르다가 정식으로 국호로 쓰게 된 것은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가 생긴 이후부터입니다.

■ 孫文은 仲國 漢族으로부터는 國父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그 이유는, 그가 기독교 사상을 먼저 터득한 후 三民主義라하여 漢族의 중국을 위한 혁명을 했는데, 그 혁명이 바로 倒滿興漢이었다. 여진족의 청국을 넘어뜨리고 어줍잖게 청국의 代統을 주장하고 있는데, 漢族이 어찌 만주족의 청국을 자기나라 正史로 수용하는가. 중국은 大淸을 이어받을 하등의 권한도, 명분도, 연고도 없다. 다만 그것은 음흉한 속셈이 있기 때문으로서 대청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인계받기 위함이었다. 곧 後金國의 후신인 대청 300년의 지배에 보복한 것이며 만주족의 근거지인 만주를 漢族투쟁의 전리품으로 강탈 확보하고 경사스러워서 만주 북쪽의 땅을 大慶이라 한 것이다. 漢, 唐, 宋, 明의 本故地를 넘어서 反擊幅을 연장하여 戰果를 확대하고 張, 蔣, 毛에 걸쳐서 현재까지 80년 가까이 만주를 무단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손문의 신해혁명은 우리 한민족에게는 反고구려, 反다물, 反배달 민족의 원수이다. 물론 그의 개인 인격은 존경받을 만한 것이겠지만, 우리 몇몇 얼간이 지식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생각도 않하고 ‘손문선생, 손문선생’하며 추종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오늘날 한족들이 만주인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교육시키고, 대만으로 건너간 국부군 40만명이, 상륙을 거부하는 얼마나 많은 대만 원주민들을 학살했으며, 오늘날 대만 원주민에 대한 역사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가 관심있게 보라(自由誌의 박창암 장군의 論考참조).

 근자에 자유중국에서는 국고정리운동(國故整理運動)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종래에는 ‘중국 역사는 중국 시조로 부터’라는 중국적 우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우상이 타파되어야 하며 중국사는 저 동이족 선조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지나 합중국 U.S.C. 석학들의 폭탄선언이 일곱권으로 된 책(冊) 《고사변(古史辨)》에 실려 있습니다. 대만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책의 발행을 허가해 놓고도 이책의 해외 유출이나 복사를 엄금하고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이천년 중국 곡필에 대한 회개문서요, 고해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 왜곡의 전통과 악벽은 지나합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로 일인(日人)들의 식민사필(植民史筆)은 중국사필의 아류요, 그 곡필의 모방에 불과합니다. 중국사필의 곡필은 원천적인 반면에 차라리 일인의 황국사관 곡필은 근대적 정형내지, 분장술(扮裝術)에 불과합니다. 일례로 그 치밀하고 악랄하기로 단연 으뜸을 차지하는 한사군 날조의 사적(史賊)행위만 봐도 중·일 양국의 공동 범죄관계를 훌륭히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만에서 국고정리운동이 그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와 뜻은, ‘그들의 선조인 삼황오제 하·은·주 및 춘추전국의 군대들과 진시황까지 동이족인데, 동이족인 조선왕조나 일인들도 모두 천하 제후국에 속하고 모두 중국 천자에게 조공하는 제후국이었음을 동이의 고전들은 명기하고 있으니, 동이는 자고로 우리(중국)의 속방이다’하는 중화우월주의 철학에 입각한 학술운동인 것입니다. 어떻든 중국의 삼황오제, 하·은·주 및 춘추전국의 군대들, 진시황까지를 동이족이라고 저들 입으로 증명했습니다. 춘추시대의 공자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얕은 수 쓰다가 들통이 난 셈이지요. 동시에 한국 사계(史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중대한 계제가 되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조선왕조 500년간 중국을 상국으로,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고 살아왔음을 중국인은 숙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필은 춘추필법이라 해서 3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중 첫째가 중국을 위해서 수치를 숨기고(爲中國僞恥), 둘째 중국을 높이고 외국을 깎아 내리며(矜華而陋夷狄), 셋째가 중국 내부의 역사는 상세히 다루고 외국의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祥內略外)로서 그 역사 왜곡의 수법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위의 의도를 보면 이 필법이 아직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증거입니다.

이상 설명드린 바와 같이 진상을 알고 보면 황하 문명의 주역은 우리 동이족이었고, 한문자·한의학 등도 동이의 소산이며, 삼황오제·음양오행도 동이의 3신5제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황하 문명 그 자체도 우리 한민족의 문명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명의 모태(母胎)역할, 산모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한국(桓國)의 송화강(松花江)문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황하문명은 제2의 송화강문명이며, 한단문명(桓檀文明)의 남방권(南方圈)이었습니다.

요령성 서부에서 발굴된, 돌로 쌓은 대형 제단(祭檀), 여신묘(女神廟), 적석총(積石塚)등 5천년 전의 유물들은, 신시 및 고조선 강역의 유물로서 요령성의 토착인들이 황하유역에 뒤지지 않는 사회성장과 문화발전을 이룩한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이 積石塚은 紅山文化 말기 小河沿文化로의 과도기 유적이며, 다음에 오는 豊下文化 유적이 500여곳이 넘게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풍하문화는 청동기문화로서 4400년 전쯤 된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 전 2500-3000년 경에 청동기 문화에 진입하였으며〔신시의 치우천황의 동두철액(銅頭鐵額), 치우천황은 단군보다 400년 전 임금〕, 추방사회를 거쳐 이미 오래 전에 신시 배달국이라는 국가 단계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사 연표에 보면 고조선 개국시기(BC 2333)에 와서야 고조선 지역에서는 신석기문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고 또 그렇게 배워왔습니다만, 사실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것은 잘못된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동이의 역사는 중국 역사보다 한없이 깊고, 동이 역사가 바로 중국 역사의 머리가 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따라서 신시배달국과 고조선이 실재했던 6천년 한민족의 역사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데 수긍이 갈 것입니다. 여러 고기와 이러한 유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다음 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기원전 2∼3백만년에서 기원전 8000년까지를 구석기시대, 또는 원시시대,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오는 기원 전 8000년에서 3∼4000년까지를 신석기시대 또는 문명시대, 그 다음 기원전 3∼4000년에서 청동기시대 또는 차축시대(車軸시대:바퀴를 만들어 쓸 정도의 문명시대라는 뜻. 칼 야스퍼스는 BC200-BC800년간이 차축시대라고 하나 이는 중심 연대를 말함이고 전차축시대는 BC4000-8000 년이라고 한다. 차축시대에 공자·노자·소크라테스 등 성인이 나왔음), 그 다음이 철기시대가 됩니다.

한단고기나 규원사화의 태시기에 나오는 한임의 한국 설화는 짧게는 기원전 8000년으로부터, 멀리는 중앙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최근 발견된 35000년전의 구석기 유물 연대와 지역적·연대적으로 일치됨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소련의 고고학자인 비탈리 라리체프가 발표한 《시베리아 구석기 문화》에서, 1975년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노보시비르스크 산(山) 및 Abakan산맥의 계곡에서 발견됐다는 유물이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지역은 바이칼 호수 부근으로서 한임의 ‘한나라’의 중심지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한단고기에 한국의 지속연대는 7대 63182년, 또는 3301년으로 나오고 7대 4320년으로 나오는 고기도 있습니다. 부도지(符都誌)라는 책자에 의하면, 한임전에 유인씨(有因氏:한인의 아버지)의 마고성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한단고기의 63182년이라는 연대는 마고성, 즉 파밀로부터의 인류역사로 유추할 수 있으며, 바이칼호수 주변의 유물과 연관 짓는다면 아전인수격인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역사를 보는 눈은 마음을 열어놓고 유추를 해야하며 기록 연대에 너무 한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은 학문적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날 노아의 홍수도 사실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생화학과 교수인 W,M,브라운 씨는 18만년-36만년 전에 아시아에서는 대협인이,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있었는데, 아시아의 대협인이 네안데르탈인을 소멸하고 황색인·백인·흑인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유전인자의 연구에 의한 결론으로 내놓았습니다. 신사기(神事記)와 한단고기를 보면 황·백·적·현(玄)·람(藍)의 5색 인종의 파생에 대한 설화가 나오는데 현재의 고고학(古考學)·인류학·신학·언어학 등에 의하여 한국, 한웅(神市)의 역사도 점차로 역사적인 실연대(實年代)로 증명 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과거 백만년 간에 4회의 빙하시대가 있었는데(지구상 고도의 미스테리한 인류 문명의 흥망은 이 빙하기와 연결시킬 수도 있음), 최후의 제4빙하기가 약 12000년전으로써 당시의 베링해협은 육교였으므로 양 대륙이 연결되어, 몽고로이드(동이계)는 북만(北滿)을 거쳐 시베리아에서 북미대륙으로 이동 수렵을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베링해협(Bering Strait)의 폭은 88Km에 가장 깊은 수심이 50m밖에 안되며, 그것도 해협 중간에 대 Diomede(소련영토)와 소 Diomede(미국영토)라는 두 개의 섬이 있어서 경제적 실용성만 있다면 다리로서도 양 대륙이 서로 연결이 가능합니다. 이 두섬 사이로 경도 180°의 일부 변경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북위40°- 50°) 발견된 짚신(1964년 L.S. Cressman 발표) 75켤레는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하였는데, 방사성 탄소의 측정에 의하면 이는 약 9000년 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미 대륙 인디안의 언어와 생활도구, 신앙, 풍습은 많은 것이 우리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만일 그 짚신과 고대 인디안이 우리와 관련된 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서도 10000년이라는 우리 역사의 방증을 하나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황하유역에서 넓이가 한강 이남의 반도만한 대문구 문명권(大汶口文明圈)이 발견되었는데 (최근 중공의 당란 씨의 발표. 1977.7.14. 중공광명일보) 역시 방사성 탄소측정 결과 5785(±100년)년 전의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문자 사용 흔적까지 남아있는데 소호(少昊:소호는 동이족)라는 국명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대는 우리의 신시배달국 초창기 시대입니다. 또한 근자에는 소련 여류 민속학자 R.S.H 자리카시노바의 발표에 의하면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에 벌써 사람이 살았고, 신석기시대(약 만년전 이후)에는 일찍이 한국적인 문화의 독특성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외에 여러 고대유적, 유물이 국내외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을 신문지상을 통해서 많이 보아 알고 있습니다. 몇가지 고기록에 의하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일치되게 한국의 역년이 7대에 3301년, 신시배달국은 18대에 1565년, 단군조선은 47대에 2096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국과 신시배달국의 실재성에 대해 감이 잡히시리라 믿습니다. 일본은 1300년 밖에 안 되는 자타가 다 아는 일본 역사를 2600년으로 엿가락처럼 늘려 역사를 조작하였으면서도 당당히 가르치고 세상에 소문을 내고 있으며 중국은 동이역사를 자기네 한족(漢族)의 역사라고 억지를 써서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는 기록에도 있고 여러 가지 증거가 있는데도 서양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이나 중국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으니 우리 역사로 바로 잡아 가르칠 수 없다고 하는 자신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역사는 쓰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만년 역사 대국이라고 써서 가르쳐도 하등의 조작도, 거짓도 아닌 사실 그대로의 당당한 역사인데 왜 국사학계는 그렇게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1만년 대역사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대국이며, 우리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순수한 옛 인류 조상의 언어인 고 아시아어(古Asia 語)와 옛 조상의 순수한 혈통을 이어받은 인류 문명의 기원민족이라고 당당히 외치고 주장해도 하등의 하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온 세계 만방에 공포해야 합니다. 인류문명의 기원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철학론에서 설명 하겠습니다.

 ■ 헤아릴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느날, 망망한 만주 평원의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하게 밝아오는 그 빛이 억만 년 사람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는 흥안령의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큼직하고 힘줄이 불툭불툭한 큰 사람의 한 떼가 허리엔 제각기 돌도끼를 차고, 손에는 억센 활들을 들고 선발대의 걸음으로 그 꼭대기에 나타났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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