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과 3국- 일본 민족과 역사의 뿌리

목에 가시 같던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시원스럽게 달아나 버렸습니다. 만주를 중심부로 한 대륙에서 47대 단제(檀帝)에 걸쳐, 2096년 간 웅비하였던 군사대국 고조선은 구체적인 한국사의 첫 부분을 장식할 뿐 아니라 한민족과 문화가 신시 배달국에 이어 이 시기에 완전히 형성되었습니다.
고조선은 초기부터 청동기 시대였는데, 최근 요령성에서 발굴된 여러 유적·유물이 황하권과는 전혀 다른 앞선 문명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륙을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관료조직(유목민 기상)과 경제력(농경 정착성)을 갖춘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강대국이 오래된(2096년) 고목과 같이 생명을 다하고 해체되면서 그 대통은 고구려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이 과도기 중에(BC 194년 이후 150여 년) 있었던 민족 이동 상황을 검토해 봅시다.
서기전 2세기 고조선은, 서쪽 변방(난하-대능하:요서 일대)에서 위만이 준동하고 한의 세력이 미치자 사실상 통치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예하 제후국들도 이동하게 됩니다. 대부분 요서 지역에 위치해 있던 부여·고구려·예맥·옥저·시라(尸羅)·진번·낙랑 등이 서기전 1세기 이후에는 요하 동쪽의 동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독립해 있게 됩니다.
이렇듯 고조선이 위만·한세력과 힘을 겨루며 동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요하 동쪽의 거주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마침내 연쇄적인 민족대이동(大 Exodus)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부는 흑룡강성을 거쳐 시베리아 동남부에 이르고〔태백일사/대진국 본기에는 구다천국, 곧 캄차카, 사할린 등 만주와 유사한 오츠크 문화권까지 발해에 영유되어 9000리 대진국(大震國)이 되었다함. 이때 캄차카, 미주 대륙까지도 이동한 것으로 판단됨〕, 다른 일부는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 이르렀습니다.『한단고기』의 태백일사/고구려국 본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고조선 통치제도상 이때까지도 막조선, 곧 마한(馬韓)임금의 나라였는데, 북쪽 동만주 지역의 진국인(辰國人:진조선인)과 서쪽 변조선인이 남하(南下)하면서 이전의 나라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와 반도 안에 진조선, 변조선이 그대로 재현 되었습니다〔이 시기의 막조선을 일명 중마한(中馬韓)이라고 부르고 중마한의 땅인 소백산 넘어 외진 곳, 중마한이 통치하기 어려운 곳에 진한 임금과 변한 임금의 유이민들이 멀리 내려와 땅을 받아 수도로 정하고 나름대로 나라이름을 정하여 중마한의 다스림을 받았음〕, 동시에 북방의 풍운(風雲)이 잦은 관계로 말조선(馬·莫朝鮮)도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朝鮮)이란 이름이 역대 지나(支那) 제왕(帝王)들의 칼 앞에서 빛나던 이름으로 ‘외국인이 시기하는 바라’하여, 드디어 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옛날 왕호(王號)로 쓰던 한(汗→韓)을 써서 마한·진한·변한이라 한것입니다. 이러한 과도기·혼란기 내지 공백기에 들어온 번왕(番王) 기준(箕準)도, 한씨 왕(韓氏王)만 아는 국인(國人)들의 취향에 맞추어 한씨(韓氏)로 개성(改姓)하게 된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왕실은 통치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AD 3세기까지 청천강 유역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붕괴와 더불어 일어난 열국시대 전개 이후에 삼국으로 정립한 고구려·신라·백제는 모두 고조선의 후계 세력이었으며, 따라서 동일한 민족이라는 의식은 반도 남부에까지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라는 진한지역에서, 백제는 마한지역에서 성장하였고, 고구려는 옛 마한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 신라·백제가 건국되기 전에 반도 남쪽지역을 지배했던 남만주 부여족 출신의 진왕(辰王)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대륙의 진계(辰系)와 번계(番系)가 세운 변한인(弁韓人)은 반도 남단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일본 구주 북부와 오사카 지역(幾內)으로 이주(移住)하여(AD 4세기 전후까지) 연합세력을 형성하였음. 이러한 大陸系의 前後 이주민들이 일본 민족과 일본국가의 주류가 되므로서 일본의 부여인 기마민족 조상설(扶餘人 騎馬民族 祖上說)이 나오게 된 것임.

신라를 건국한 진한의 6부는, 원래는 고조선 유민이었고 동몽고(東蒙古) 부이루(Buir. 沸流)호수 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제후국 시라(尸羅)계와, 진국계였다고 고기에 나와 있습니다.〔북부여제실녀(北扶餘帝室女) 파소성모(婆蘇聖母)가 남부(男夫)없이 혁거세(赫居世)를 잉태, 남하하였음〕. 백제를 건국한 온조 세력은 고구려 왕족인데, 고구려는 원래 고조선의 제후국이었습니다.

■ Buir, 夫婁 라는 말은 불-태양에서 나온 말로서 밝음을 의미하며 부여(扶餘)도 부옇다 밝다에서 나왔다 함. 비류(온조의 형)는 동몽고와 북만주사이의 부이루 호수에서 유래 됐다 함. 북부여는 고구려의 前身이며 고구려 시조는 백제의 조상으로서 王孫 半千年의 세월이 흘러도 그들 시조의 출신지에 대한 향수를 못 잊어 백제 26대 聖王 때에는 공주에서 수도를 옮겨 도읍 이름도 扶餘라 하고 나라 이름도 南扶餘라고 하였음.

따라서 결국 고구려, 신라, 백제의 지배층은 대부분 고조선의 후계 세력으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의식으로 통일에의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었으며, 고조선의 고토수복을 위해서 고구려와 백제는 계속해서 요동과 요서 및 산동 등 중원 진출을 꾀했던 것이며, 신라는 일본을 정벌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온조의 형제 비류가 요서 일대에서 활동한 것도 위 사실들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 백제는 5세기까지 약 400년간 황하와 양자강 일대에 자치 백제군을 두었고 일본을 분치하였음.

■ 시라〔길림(吉林)=계림(鷄林)=찌린(始林)〕: 신라의 前身인 시라는 吉林에서 건국정착

그리고 고대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일본의 야요이 문화(彌生 文化)의 전개 시기가 고조선의 붕괴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때의 거주민 이동이 일본에까지 미쳤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군사력을 앞세운 동북아의 기마민족이 우리 나라를 거쳐 일본열도에 진출하여 미개지에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중국과 대등하게 결전(決戰)한 강력한 군사력의 기마민족적 요소와 철기를 농기구로 사용한 농경문화적 요소로서 일본열도에 야요이 문화를 꽃피운 것입니다.
그런데 명치유신때부터 일본은 자기들의 역사를 조작·날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대륙의 기마민족적 요소만 강조하고 농경민족적 요소는 빼버린 채 일본문화를 독자적 자생문화로 오도하고 있으나 일본의 국가기관이나 사회·문화분야의 주체 세력은, 한국에서 건너간 부여·고구려·신라·백제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황하 문명의 주인공이 동이겨레였던 것처럼, 일본 국가의 구성요소가 한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일본민족은 아이누와 같은 원주민과 조류를 타고 흘러온 남양족에다가,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건너간 인종들이 혼합되어서 서서히 만들어진 민족입니다. 그 중에서 한국인은 미국에서의 영국계, 즉 앵글로색슨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들은 겨우 7세기(신라통일 이후)에 와서야 한국인의 절대적인 뒷받침 아래 처음으로 국가를 세웠습니다. 11세기까지는 사실상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고려의 분국(分國), 또는 속국(屬國)과 같은 지위에 머물러 있었으며, 옛부터 구주와 대마도는 우리 삼한이 나누어서 다스리던 땅이었습니다〔卞韓人의 북구주, 기내(畿內:오사카 지역) 정복역사, 소위 신라 해적, 백마총 소개〕
지리적 이점으로 서양문물에 먼저 눈뜬 그들 명치유신(1868) 주도세력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열등의식을 느끼자, 1300년밖에 안 되는 일본 역사를 대폭 날조하여 2600년간의 만세일계(萬歲一系) 황국사관(皇國史官)의 역사 조작극을 연출한 것입니다.
1300년이 2600년으로 엿가락처럼 늘어나서 2600년간 한 번도 중단 없이 한 계통의 왕이 지금까지 일본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初代 神武로부터 현재의 125代 平成까지의 일본 왕계표를 한 번 보라.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조작(象徵造作)을 통해서라도 일본 역사가들은 일본민족의 구심점(球心点)을 만들고 민족 자존심을 고무시켜야 했으며 마침내 국민을 단합시켜 아시아 천지를 소란케 만든 것인데, 우리 국사학계 식민사학자들은 어떤 형편입니까?
엄연히 살아 있는 사실(事實)의 제나라 역사도 ‘실증(實證)이 되지 않는다’하여 부정하고, ‘단군실사도 고려 때에 몽고의 침입을 당하여 만들어진 신화’라고 주장하는, 왜놈 학자들의 말에는 귀가 솔깃해지고…어떻든 이제 국사가 사실대로 개정되더라도 이들의 족보는 철저하게 파헤쳐져서 장차 국민교육을 위하여 참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약탈해갔거나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과 일본의 신무천황(神武天皇)도 부여계의 한국인이고, 대화(大和:신라 진덕여왕의 연호)국 효덕왕(36代 孝德王:신라계)에 이어 7세기 일본여왕 사이메이(齊明)천황도 백제 의자왕의 누이동생이며, 일본이라는 국호를 처음 지었다는 덴지(天智)천황도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용(扶餘勇)이었습니다.
일본의 무사도인 ‘사무라이’도 백제 문무도의 ‘싸울아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고구려에는 조의선인( 衣仙人), 신라에는 花郞道, 백제에는 文武道의 싸움애비(싸울아비→사무라이)들이 있었음. 화랑도는 花徒·郞徒·道徒로 나뉘는데 화도는 일반적인 학문에, 랑도는 武 곧 體練에, 道徒는 정신수련에 치중하였으며, 郞徒는 일본 무사의 기원이 되는 것임.

그들은 백제가 망하고 (백제 구원군설 설명)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임진왜란 때 조선땅에 첫발을 올려놓자마자 ‘1000년의 한(恨)을 풀었다’하고 외쳤다던 한민족의 찌꺼기들인 것입니다.(그래서 옛 백제지역인 호남땅을 점령하지 못했다는 우스개 말도 있습니다.)
중국의 민족구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습니다만, 그들의 하화계란 것도 근거가 명확하지 못한 허황한 것입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동이겨레의 찌꺼기(殘民)들인 것입니다.(찌꺼기는 남은 유민, 또는 후손이라는 말. 월남에도 우리 찌꺼기가 있을 것임).
그런데도 우리가 역사교육을 받기로는 한국고대의 사회와 문화가 항상 주변 문화보다 낮고, 그들이 주(主)요, 우리가 종(從)인 것으로 배웠습니다만, 실은 우리가 주요, 그들이 종인 것입니다.
우리 고대문화의 원류가 불교나 유교문화인 줄 알고 있지만, 한국의 토착적·독자적 문화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래문화가 접목된 것입니다.이 주종관계를 모르면, 또 서양문화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맥없는 교육, 정신없는 교육이었습니다(무정신의 歷史). 그것도 제대로나 가르쳤으면 좋았으련만, 단군조선은 쏙 빼버리고 난데없이 유식한 중국의 위만이라는 자가 들어와서 식민지 통치를 함으로써 미개했던 우리 선조들을 교화한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석기 야만인이던 우리 선조들이 중국의 문물을 받아서 개명이 됐으니, 우리는 처음부터 식민지 통치하에서 역사가 시작된 피동적인 민족으로 윤색이 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웅대했던 대륙인(大陸人) 후손들이 삼국을 건립한 경로와 고조선의 옛 강토를 전부 회복하고 중국과 일본을 호령하던 기상을 역사에서 빼버렸습니다. 기껏해야 고구려의 영토가 동만주의 요하까지였다는 것 외에 백제의 요서 진출은 들은 적도 없고 신라의 일본 정벌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참고로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일본의 명치(明治)라는 연호는, 고구려 21대 문자호태열제(文治明王:AD 491-519)가 쓰던 명치 연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대화(大和)라는 이름도 신라 진덕여왕의 연호였습니다.
북경의 천안문(天安門)은, 우리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漱) 어른이,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요서지역.BC 220년)에 지은 366간의 궁궐이름 천안궁(天安宮)에서 따간 것입니다.

사학은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달리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큽니다.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 국민의 얼굴이요, 이력서요, 호적이요, 주민등록이고 신분 증명서이며 족보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애국심의 원천입니다. ‘사필이 강해야 민족이 강하고, 사필이 용감해야 민족이 용감해진다’는 선대 사학자들의 피 끊는 절규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옛 역사를 사실대로 파헤쳐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반격을 가하고 중국의 음흉한 곡필을 부러뜨려 놓읍시다.

임승국 교수가 주창하신 대로 우리 국사교과서에 적나라한 한일 고대 관계사를 밝혀 쓰고, 일본 천황은 백제 의자왕의 후손이고, 일본인의 반수는 조선인의 후예이며, 일본은 백제인들이 세운 나라로서 35년간의 조선 국권 침탈은 일종의 존속상해 사건에 비할 일본인들의 만행임을 일인들은 잘 알고 있다고 직필합시다.
그리고 지나합중국(U.S.C.)의 사실을 과학적 역사적으로 고증하여 국사에 명문화시킵시다. 그리고 한일 동조론을 우리가 역으로 주장할 때입니다. 내선 동조론이 한·일 동조론으로, 한민족 선조론으로, 미국의 영국에 대한 자세와 같은 한국 모국론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중국은 남의 역사를 송두리 채 가로채서 자기 나라 역사를 빛내고, 일본은 자기나라 국사를 조작하는 외에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 역사까지 왜곡하였는데, 우리는 왜 역사를 침탈당하고도 우두커니 앉아 말만 무성하고 행동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도 우리 국사를 바로잡는 것 외에 일본사연구회라든지 일본사편수회를 국책으로 만들어 일본사를 바로 잡아주고 우리 손으로 만든 ‘신편 일본사’를 우리 돈으로 일본에 역수출하여 아시아의 역사를 바로 잡는 일과 함께 역사 반격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주동이 되어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상고시대 조상들의 웅비상과 기자·위만조선·한4군의 허상(虛像)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만, 우리가 잘못 배우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 알았던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는데 보탬이 되기 위하여, 다음 몇 가지의 사실과 가설을,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로 제시합니다.

■ 북부여와 삼국의 선조가 바이칼 호수와 북만주 부이루 호수 일대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과, 바이칼호 근방에 코리아인이라고 자칭하는 브리아트 족속들이 지금도 살고 있으며, 대륙에 KORE (高札), KORI(句麗, 高句麗, 離國). KUR(스므러어:丘陵 hill), 가우리(Caule:한가운데, 가장자리, 고구려의 원 국명)라는 용어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

■ 요동반도 북부의 해성(海城←검성←왕검성)이 고조선 때부터 평양으로 불려 왔으며, 고구려 동천왕 때 천도한 평양은 해성이라는 사실(山上王時 서부국경신장)

■ 살수 대첩은 현재의 청천강싸움이 아니고, 옛 薩水인 만주의 대능하 싸움이라는 사실(해성과 장수왕때 천도했다는? 현 평양 연계 검토)

■ 안시성 싸움의 안시성은 요하 동쪽이 아니고 북경근처에 있다는 사실(고려진·고려성 등의 지명이 현존)과 막리지가 안시성주 양만춘 추종국과 함께 당(唐)의 수도 장안에 입성하여 이세민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양자강 이남 복건성까지 일시적으로 고구려 영토에 편입한 사실

■ 고조선-고구려-대진국(大震國), 신라-고려 때까지 건원칭제한 사실

■ 백제가 우리 나라 서남단(西南端)만의 백제가 아니고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웅대한 대륙백제, 해양(海洋) 백제로서 양자강 이북 동해안 일대를 400년간(3-6세기) 자치 백제 지역을 두고 지배한 사실〔백제 동성왕의 묘(墓)가 산동반도 청도 서북에 있으며, 백제의 도읍이 중국 요서의 고마성과 內地에 거발성 등 2개소 였음〕

■ 三韓이 일본을 나누어 지배하고, 신라가 일본을 정벌한 사실(신라 무열왕이 오사카 정복; 백마총 AD 654-661)과 일본에서 羅·濟간에 주도권 쟁탈싸움이 있었으며 백제가 일본국의 왕족과 지배 계급이 된 사실(역사상 황해와, 동해, 남해는 우리의 內海였으며, 日本은 우리의 식민지였음)

■ 통일신라의 강역이 한때 북경 및 열하성까지였다는 사실(AD 736 성덕 여왕때 대진국에 밀려 압록강 이남 차지)

■ 아리수가 여러 개 있다는 사실(서압록·동압록·북아리·한수·기타)

■ 대진국(발해)의 영토가 한때 산서성에서 캄차카, 베링해까지였던 사실

■ 한단고기의 내용이 그대로 民族正史요, 민족경전이라는 사실

■ 요·금·청을 우리의 北朝史에 포함시킨 민족사학(『신단민사』김교헌 저) 소개와, 앞으로 우리 正史에 반영하는 문제(말갈족·여진족은 먼 異族이 아니고 우리와 한 족속으로 동이의 한 갈래임)

■ 우리의 역사를 발전기-분열기-정체기의 역사주기로 교육함으로써 다시 발전기로 도약하는 역사의 순환성 교육 문제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역사의 강역은 결코 반도나 현재의 요하까지가 아니었으며, 북경일대 산동까지 북중국 대부분과 만주 전체 및 연해주 일대는 신시 개천이래 우리의 영토로써, 특히 만주지역은 신시배달국·고조선·고구려·대진국·요·금·원·청 등 우리 민족과 동이족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에 비하여 근대까지 한족이 다스린 기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 고려시대 이후로 조공사신을 북으로 보내기 수 백년이 되었건만, 이는 한하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만주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北崖老人의 揆園史話漫說》

현재의 압록강·두만강 국경선은, 우리의 외교권을 앗아간 일제가 조선정부를 대신해서 정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지난 1965년에 간도협정이 무효임을 선언했으므로 현재의 국경은 법적 근거를 상실 한 것이며, 만주 대륙 일부는 무단 점령에 불과한 것입니다. ‘독도는 우리 땅’하고 노래 부르는 대신 ‘만몽(滿蒙)은 우리 땅’이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단한국(桓檀韓國)으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사상으로 ‘다물’합시다.

■ 슬프다! 우리 선조의 옛 강토가 적국의 손에 들어간 지 어느덧 천년이요, 이제 그 해독이 날로 심하니 옛 날을 회고하고 오늘을 슬퍼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北崖者의 규원사화》

방대한 역사(고대사)를 최대한으로 함축하여 최단시간에 소개하려다 보니 살이 부족하여 이해하기 힘든데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른 기회에 추가 부연하기로 하고 ‘한’사상론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증산 강일순 선생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난법(亂法)을 보인후에 진법(眞法)을 보이리라.’ 난법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진법으로의 원시반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분열이 분열되어 통일이 되고 [分分而統], 부정(否定)이 부정되어 긍정(肯定)이 되는 것입니다[反反而正]. 진리는 진리로서 나타나고 맙니다[正正而正]. 이것이 정반합(正反合)의 원리입니다. 이 이중부정 논리(二重否定論理)와 이원론(二元論) 극복사상이 바로 ‘한’ 사상입니다.

■ 파미르를 중심으로 몽고 종족이 분파 하였으니, 흰머리아산으로 붙어서 나간 것은 인도네시아, 말레이人 등 남부 종족을 이루었고, 곤륜산으로 붙어 나간 것은 소위 하화계라는 지나인의 근간을 이루었고, 동북방 천산 쪽으로 붙어 나간 것은 桓族으로서 동북아시아의 몽고 정통 종족을 이루었음.

■ 한웅이 桓因으로부터 天符印 3개를 하사 받고 도착한 太白山이, 중국의 태백산과 백두산의 태백산으로 주장이 엇갈리는데, 7대의 한임이 한국을 3301년간 통치하는 동안에 바이칼호로 중심지를 옮겼으며, 바이칼호로부터 이동방향을 추적한다면 백두산이 타당함(바이칼→흥안령→백두산). 상기 몽고 종족의 분파 이동상황을 보더라도 한민족은 천산쪽으로 이동하였으므로, 단군史話의 시원은 알타이 산맥 동서에 거주한 웅호 양족과 바이칼호와 몽고초원이었음. 최근 발굴되고 있는 바이칼 일대와 만주일대의 유물유적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 배달국은 중국의 중서부에서 동쪽으로 확대된 것이 아니고 만주에서 서남부로 청구국을 확대 한 것임. 초대 한임(안파견)은 파밀과 천산일대에 강림했으나 그 후 바이칼 일대로 이동했으며, 동쪽을 향하여 흥안령을 넘어 백두산 기슭에 정착함으로써 그 후 모든 문명의 시작은 동방(백두산)이 되었음. 이상은 역사 전개의 주맥(主脈)이며 한족(桓族)의 소수 지맥(支脈)은 중국 변방인 감숙성 돈황현의 삼위산(三危山) 일대를 은거지로 하였다가 황하를 따라 東으로, 山東지역에 이동하는 夏華系와의 혼합과정도 있었을 것임. 따라서 西쪽에서 온 하화계도 본래는 동이족과의 혼합족속으로 볼 수 있음. Tibet라는 지명은 신시(神市) 15代 치액특 한웅이 그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생긴 지명이 아니고 그의 후손 종족이 청구 땅에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음. 현재의 Tibet인과 네팔인의 조상이 이 경로를 거쳐간 족속이 아닌가함.

■ 옛 글에 이르기를(古記云), 대륙일대에서 제일 으뜸인 파미르산 밑(波奈留之山下] 지구상에 한임의 나라가 있었는데(有桓因氏之國), 그 주요부는 바이칼호 이동지역(天海以東之地)이지만 또한 파미르의 나라라고 부름으로써(亦稱波奈留之國) 천해를 비롯한 파밀주위의 온 땅을 차지했는데, 그 땅 넓이가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니(基地廣南北五萬里 東西二萬里), 통털어 말하면, 한국이요(言桓國), 나누어 말하면 곧(分言則)..... 캄차카국(句茶川國)... 우르(Ur)국[虞婁國]... 슈메르(Sumer)국[須密爾國]이니, 합해서 12개(12분국)로 된 나라이다(十二國也).《桓檀古記三聖紀全下篇》

■ 파내류지산(波奈留之山)을 ‘파밀산이다’, ‘만주에 있는 산이다’하고 해석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세계 4대 인류 시원산맥(천산·곤륜·흰머리아·흰두쿠슈산맥)의 뿌리산인 파밀산임이 타당하다 하겠음. 파밀을 포함한 천산(天山) 일대와 동쪽의 天河일대를 포함하는 天海據点의 中心圈으로 봄이 옳을 것으로 판단됨. 천산이란, 옛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聖山을 뜻하는 ‘한얼뫼’로서 꼭 현재의 지명에 고정된 관념일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天山과 파미루와 Tengri 산(푸른하늘·을 의미하는 Tengri 라는 말에서 檀君이 유래됐다고도 함. Sumer 語 Dingir 딩그르는 神임)이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보다 만주로 생각하는 것은 편파 된 관념이 아닐까함. 영국도 일본도 대륙의 主山인 파미르밑 지구상에 있는 한 국가들임. 천부경(天經)·삼일신고(神告)·참전계경(佺戒)의 3經과 함께 桓檀古記에 대한 어떤 통일된 번역본 출간이 국책(國策)으로 시도되어야 하겠으며 뿐만 아니라 국고(國故) 정리사업을 실시하여야 할 것임.

■ 東亞의 상고사는 수렵민족과 농경민족의 각축전임. 우리는 활과 창을 들고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웅비했던 민족이며, 중국족은 농경민족으로 우리의 지배를 받았었음. 오히려 우리를 지배한 것처럼 인식하게 된 것은 중국의 곡필과 수 백년간 쌓여온 우리 선조 유학자들의 사대 모화 열등감이 빚어낸 공동 작품의 결과임.

우리의 역사(주로 상고사)와 ‘한’철학에 대하여 관심있는 분을 위하여 간단히 책 소개를 하겠습니다.

    ○ 한단고기 : 이미 소개하였지만 여러 가지 번역본이 있습니다.
                        임승국 번역 桓檀古記
                        강수원 번역 桓檀古記
                        김은수 번역 桓檀古記
                        이민수 번역 桓檀古記

    ○ 『고대 민족사 연구』 안호상 저 (한웅과 단군과 화랑)
    ○ 『배달 동이는 동이겨레와 동아문화의 발상지』 안호상 저
    ○ 『韓民族의 뿌리 思想』 송호수 저
    ○ 『한철학』 김상일 저
    ○ 『한사상』 김상일 저
    ○ 『史林』 임승국 저
    ○ 『한국고대사신론』 윤내현 저
    ○ 『韓思想의 妙脈』 이을호 저
    ○ 『符都誌』 박제상 저
    ○ 『大倍達民族史』 이유립 저
    ○ 『民族史의 脈을 찾아서』 박성수 저
    ○ 『잃어버린 歷史를 찾아서』 서희건 저
    ○ 『天符經과 數의 世界』 최재충 저
    ○ 『民族의 뿌리』 최재충 저
    ○ 『民族知性(86,11號)』
    ○ 『朝鮮上古史』 신채호 저
    ○ 『신단민사』 김교헌 저(고동영 역)
    ○ 『揆園史話』 북애자 저(고동영 역)
    ○ 『檀奇古史』 대야발 저(고동영 역)
    ○ 『天符經과 檀君史話』 김동춘 저
    ○ 소설 《丹》 김정빈 저
    ○ 소설 《다물》(민족미래소설) 김태영 저
    ○ 『단군조선 47대』 김은수 저
    ○ 『韓國의 始原思想』 박용숙 저 (無順)

■ 공개질문 1(고고학자들에게 보내는 질문)

북한에서는 만주 대륙과 북중국 일대의 대륙 고조선을 가르치고 있고, 한사군은 사라졌으며, 살수대첩도 청천강이 아닌 당시의 살수였던 만주 중부의 강에서 있었던 싸움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들린다. 물론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의하여 노예제사회니 봉건사회니 하고 가르치고 있겠지만 고조선이라는 강역과 국가체계는 회복하였다고 본다.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1960년대에 격렬한 논쟁을 거친 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데, 그때 고고학자들의 뒷받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있었다면 북한의 고고학자들이 엉터리였다는 말이고 남한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는 말인가?(고조선 강역에 관한 한 북한 학자들의 논거는 지역적으로 우리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공개질문 2 (역사학자들에게 보내는 질문)

이른바 강단학파 학자들 편에서 소위 재야사서라 일컫는 한단고기·규원사화 등 사서의 내용을, 삼국사기 편찬 시 김부식이 그런 류의 古史書를 ‘비사(秘史)’라 ‘참설(讖說)’이라 하여 무시해 버렸듯이 지금의 국사학자들도 이것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正史로 받아들일 것인가. 또는 정사도 위서도 아닌 그런 책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밀쳐두고 말 것인가?
(인정하든 안하든 진실은 진실대로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말 것이나, 짚어 보고 넘어 가고 싶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청동기시대는 자연히 서력 기원전 2700-3000년이 되며 또한 옛 요동일대의 유물유적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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