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상-태평양시대를 주도하고 세계를 구원할 사상

그러면 이제 우리의 ‘한’사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사상이란 어떠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이것이 한사상이다’라고 몇 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한철학에 대해서 저서를 내신 여러 분들의 글을 인용해서 말씀드리겠는데, 그 글 가운데 여기저기서 요점만 발췌해서 간추린다 해도 상당한 분량이 됩니다. 하여튼 소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계속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사상’하면 그저 막연하게 느끼거나, 아니면 때묻고 고루한 엽전이나 합바지 사상, 또는 무속적인 삼시랑이나 들먹이는 신앙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도 말뜻 그대로 뜬구름 잡듯이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 자신들도 멸시해서 불렀던 엽전이나 합바지가 반대로 한없이 뜻이 깊은 오묘한 대명사이며, ‘한’이란 용어 역시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고, 또 펼쳐야 할 자랑스러운 용어입니다.
명치유신이래 일본이 탈아론(脫亞論)을 부르짖고 서양인 행세를 해왔지만, 과연 서구 문명이 지금 도달한 결과를 본다면 그렇게 잘된 출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은 19세기 서구에서 대두된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를 먼저 답습하여, 한국의 것을 비합리적 내지 비과학적인 것이라며 ‘엽전’, ‘합바지’라 하고 멸시하였으며, 이러한 일본인들의 견해에 부화뇌동하여 우리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자학해 왔었습니다. 더더욱 해방 후 서구에 가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학자들이 국내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서구의 과학성 내지 합리성은 더욱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우리 것은 비합리적, 비과학적인 것으로 단정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조롱하여 ‘엽전’ 또는 ‘합바지’라 했던 것은, 엽전은 앞뒤의 구별이 없고 한복바지도 앞뒤의 구별이 없어, 시작도 끝도, 앞도 뒤도 없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원시적이라는 데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합리성과 과학성을 추구해 오던 서구 사상이 마지막 인류에게 안겨준 결론이란 분열과 전쟁, 자연파괴, 환경오염, 인간성 상실 등 물질만능사상과 허구에 빠진 공산주의 사상 외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사상이 시작도 끝도, 앞뒤도 좌우도 없는 비시원적(非始原的, nonorientable) 사상인데 비하여, 서양은 철저히 시원적(orientable)인 사상입니다.

시원적이란, 어떠한 시점(始點)이 존재(存在,being)한다는 것으로서. 그 존재로 나타나는 실체(實體)가 있어서 그 실체로부터 다른 실체(他實體) 곧 상대적 사물(相對實體)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쪽 실체에서 출발하여 떠나버린 그 상대실체는 저쪽을 향하여 계속 움직이나, 마치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제 자리에 오듯, 비행기가 이륙하면 다시 제 비행장으로 돌아오듯이 합치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영원히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실체와 상대실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원론(dualism)입니다. 실체적인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이원론이라는 철학체계를 유발하게 됩니다.
서양인들이 논리적이라 함은, 처음에서 끝으로, 아래서 위로, 직선적으로 움직여 나감을 뜻하는 시원성입니다. 일견 보기에는 비시원적인 우리 사상은 비합리적·비과학적으로 보이고, 시원적인 서양사상은 매우 합리적·과학적으로 보입니다(단기적, 단편적으로 보면). 시종(始終)이 명확하고 앞뒤가 확연하며 끊고 맺음이 있고 절도가 있고 규칙이 있으며 직선적이고 규격적이며 질서정연한 것이 있습니다. 곧 직선의 문화입니다.

이 사상이 현대 서양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인류문명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그들 서양인들로 하여금 군사적 헤게모니와 모든 주도권을 쥐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엽전과 합바지 사상은, 시종도 앞뒤도 없어 서양사람보다는 절도(節度)와 질서 면에서 뒤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발전도, 진보도 없는 정체(停滯)의 표본으로 멸시를 받아 왔습니다. 곧 곡선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직선과 곡선의 대조는 건축양식·생활면·이원론 대(對) 태극(太極)의 무극(無極)사상 등 모든 면에서 뚜렷이 나타납니다.

전통적 개념으로 볼 때 ‘한’사상이 비합리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특징으로 삼는 것이 ‘한’철학입니다.
그러나 실체론적 시원성에서 유래되는 이원론의 종국(終局)에는 양극화 현상,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등 흑백 논리로 전개되어 조화와 합일을 찾지 못하고 파국 직전의 한계성을 절감하기 시작하였으며 드디어 비시원론적·비실체론적·비이원론적인 것의 가치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곧 비과학적, 비합리적 사상으로 멸시·냉대 받던 우리의 사상이 마침내 주목받고 재인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서양이 동양사상에로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된 사정이며, 그들이 인도나 중국, 일본 등 동양연구에 열을 올리게 된 동기입니다.

그러나 인도나 중국의 불교는 한국불교에 비하여 더 많이 실체적이며 시원적인 사고 위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중국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비실체적 불교, 즉 무(無, Emptiness→Fullness, Openess, Conditioning, Total Interrelation)의 완전한 실현에 의한 불교자체의 모습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이는 승랑·원측·의상·원효의 불교에서 여전히 나타납니다.
유교도 아직 주자(朱子)의 이원론에서 머뭇거리는 신유교(新儒敎)를 율곡은 완전히 비이원론적 신유교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고유한 ‘한’사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비시원론적 ‘한’사상은 미다스의 만짐(Midas’ Touch)같이 만지는 모든 것을 비시원적으로 만들었습니다(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이 만지는 모든 것이 금이 되었다고 함).

서양 사람들이 중국·인도·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이야말로 동양의 뿌리요, 감춰진 진주라는 것을 이제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의 합리주의라 함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우튼의 물리학적 입장에서 본 합리성이요, 진보주의라 함은 찰스 다윈의 입장에서 본 진보입니다.
그러나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물리학은 뉴우튼의 물리학에서 아인쉬타인 상대성이론의 물리학(縱,橫,高,時間→4차원 장의 존재→세계, 우주, 같은 물체, 같은 장소 동시 존재→양자 이론)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클 수 있고, 평행선은 만나며, 1 + 1=2 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고, 뉴우튼 물리학의 입자-실체설은 부정되고, 입자-파동의 장(場)의 이론으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고전수학과 고전물리학에 근거를 둔 칸트철학의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에서, 수학과 물리학에서 새로이 등장한 것이 A.N. Whitehead 의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ly)」입니다.

창시자인 화이트헤드는 자기 사상이 서양보다는 동양에 더 가깝다고 말하며 현재는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도교와 연관된 연구자료가 나오고 있고 한국 사상과의 관계는 시작 단계라고 합니다만, 그의 이름도 한백두(韓白頭)로 전음전의(轉音轉意)할 수 있으니 기연(奇緣)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이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련과 미국에서 연구되고 있다는 통일장 원리(統一場 原理)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아득한 옛날부터 ‘한’사상이라는 상대성·조화성·통일성을 달성한 합일사상이 있었습니다. 곧 중국의 음양론과 서양의 전통적 2치 논리학보다 우수한 현대수리적 다치논리학적 ‘한’철학이라는 독자적 사상체계를 이룩하고 있었습니다.

■ 중국의 음양론은 우리의 태극사상에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삼신오제를 본 떠서 나중에 음양오행설이라는 다소 이상한 형태로 발전시켰으나 우리의 金一夫(1826-1888)선생의 正易에 의해서 완성됨. 서양의 전통적 二置論理學인 헤겔의 변증법은 both/and에 의해서 종합되던가, 키에르케골의 양자 중 택일은 either/or에 의하여 선택되므로 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함. 이에 비하여 현대수리학적 다치논리학인 ‘한’철학은 neither/nor로 二重否定이 되며, 이원론적 일원론의 무극사상이 됨. 실로 서양과 한국의 철학적 개안에는 2000년 이상의 時差가 생김(김상일 박사의 《한철학》 1985 전망사刊 참고)

이제 우리가 이 사상을 하루 빨리 갈고 닦아서 무장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백인들의 과정철학이나 통일장 원리 등 백인 주도 사상에 의해 추월 당하고 말지 모릅니다.

■ 현재로서는 과정철학이 오랜 전통의 한국사상을 접하게 되어 더 심화될 수 있고, 한국사상은 과정철학을 통해 현대적으로 세련될 수 있는 相補的 상태라 하며, 또 통일장 과학도 심령과학기술+물리과학기술→통일장과학기술(종교와 과학통일의 일종)로 과학기술면에 치중되어 있다함. 고전수학 또는 물리학→현대 수학 또는 물리학→통일장 수학 또는 물리학

엽전과 합바지 이야기를 하다가 실체론과 비실체론, 시원성과 비시원성, 거기서 기인되는 이원론과 합일론적 한사상 등 철학용어가 거론되었습니다. 합일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만, ‘한’이라는 말 자체가 그 앞에 ‘합일론’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 속에 이미 온 [合]과 낱 [一](全個調化), 많음[多]과 하나[一]가 포함된 단어입니다.

예를 들면 ‘한 반(班)이 온통 떠들석하다’ 할 때, 한은 반원전체를 의미하는 합체(合體), 전체(全體)를 의미하며, ‘한 아름 안다’, ‘한 배 채우다’ 할 때에는 많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낱은 한 개 한 개 분리해라, 하나는 한 사람 두 사람 같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외국의 언어로는 나뉘어 질 수밖에 없는 일(一)과 다(多), 개(個)와 전(全)을 포함하여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니, ‘한’이라는 단어가 심오하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한’이란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말 전체가 그런 면이 대단히 많습니다. ‘있다(being)’만 보더라도 ‘잇다(continuity)’와 같은 발음으로 개체가 있으면 다른 개체와 이어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어가 명확치 않고 시제(時際)표시가 확실치 않으며 모호한 단어들이 많으니 비과학적·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면이 곧 비이원론적·유기체적 언어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철학은 철학을 하는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철학의 틀이 결정되고, 언어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의 사상 역시, 물(物)과 심(心),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을 서양 사람들 같이 그렇게 분리하지 않고 무의식 중에라도 이미 조화 통일 되어있고, 의식적으로도 조화 통일되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심성(心性)입니다.
이러한 한민족의 본래의 자질과 심성에 따라 우리 민족종교의 교리도 이미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끔 ‘내가 하느님이다’하고 외쳐대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 자신은 어떤 믿음의 경지에까지 가서 그렇게 외쳐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범상(凡常)한 사람들이 볼 때는 저기 미친 사람 지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미 ‘내가 하느님이다’하는 웃지 못할 종교교리를 만들어 놓고 내가 하느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곧 육화신(肉化神)이다. 인내천(人乃天)이다’하는 사상입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의 탄생신화부터 이러한 신인합일(神人合一)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소우주(小宇宙)라고 합니다. 사람처럼 귀한 것도 없습니다. ‘내가 귀하면 너도 귀한 것이다’ 그래서 상대성입니다. 여기서 동양적 평등사상과 태일사상[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중에 태일(태일)곧 사람이 제일이다]이 나오고 역사의 시대정신이 나옵니다.

■ 동학농민혁명과 같이 역사의 주체를 특권층의 왕조사에서 대중의 민중사로 교체시키고, 민족정신의 맥을 이어온 민중들이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역사의 빛이 되고 주인이 되려는 정신: 지금의 인권운동이나 민주화 요구는 오늘만의 것이 아니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되는 인류의 바램이었음

서양사상이 어떻게 하던 자유주의, 평등사상까지는 왔습니다만, 자연 상실, 인간 상실, 모순과 괴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상 말씀드린바와 같이 철학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서양과 우리의 인생관을 비교해 보면, 헤브라이 사람들의 주의(Hebraism)는 신본주의(神本主義)요, 그리스 사람들의 주의(Hellenism)는 인본주의(사람 중심주의)인데, 우리의 한 사상, 곧 ‘한’주의 (Hanism, hanbaeism, God-humanism)는 이 두 주의의 근원적이고 종합적인 신인주의(神人主義·한얼사람주의)입니다.
단군께서 ‘사람을 크게 유익케 하기[弘益人間] 위하여, 사람마다 참사람[眞人·善人]으로 만들어 신인(神人:한얼사람)이 되게 하고, 또 나라마다 참 나라로 만들어 천국(天國:한얼나라)이 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여기서 五族이란 黃·白·黑·赤·藍인종 등 온 세계 일류를 말하며, 서로들(사회, 민족, 국가, 세계 등 전체와 개체)끼리 조화를 이루고, 5訓(天訓, 神訓, 天宮訓, 世界訓, 眞理訓)을 가르쳐서 군생(群生)을 접촉해서 감화시키고, 5事(穀, 命, 病, 刑, 善惡)를 베풀어서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것임.

예수님도 그의 가르침 중에는 ‘모든 인간이 육화신으로 태어나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유혹과 욕망을 떨쳐버리고 육체를 극복하여 자기와 같이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자기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에 적합해질 수가 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신본주의는 신을 빙자하여 인간을 학대함으로써 허구주의에 빠져버리고, 인본주의는 초인적인 신성섭리를 무시함으로써 물량주의를 초발(招發)했지만, 한사상의 신인주의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포용사상이지, 흑백대립과 배타적 이원(二元:이것이 아니면 저것, 저것이 아니면 이것)사상이 아닌 것입니다.

전자가[神本, 人本] 지중해와 대서양사상이었다면, 마지막 것은 이제 막 문을 여는, 태평양을 주도할 사상이 될 것입니다. ‘한’의 유형(類型)이 우리의 본성이요, 세계적 보편성이 될 것입니다.
신인합일의 우리 사상이, 가장 핵심적인 진수로 뭉쳐있는 곳은 민족종교로 귀착됩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현재의 증산사상(甑山道), 동학사상(天道敎), 단군사상(大倧敎)의 줄기와 뿌리가 화랑도 ·국선도·풍류도(風月道)·배달도에 이릅니다. 이 배달도는 3신신앙(三神信仰)으로부터 유래되는데, 곧 고신도(古神道) 또는 신교[神敎, 천신교, 혹은 랑교(郞敎), 선교(仙敎)]라 일컫습니다. 그 선맥(仙脈)의 뿌리는 하나로서 이음동의(異音同意)입니다.

이 신교, 곧 3신사상의 핵심내용은 일 만년 전 한국의 한님으로부터 구전(口傳)된 것이 7대 한님(초대는 安巴堅, 안파쳰, 아보기 : 아버지) 3301년이 지난 후 신시 배달국의 한웅에 이르러 지금의 인사 및 부관참모격인 신지 혁덕(神誌赫德)이 사슴문자 등으로 기록하여 전해진 것을 신라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한문으로 옮겨 현재에 전하는 등 그 외 여러 경로를 통하여 현재까지 각 민족 종교 경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桓國)·배달국·고조선·고구려·발해를 이어 수 천년간 수 만리 대강토와 수억의 백성[14대 단군 고불제(古弗帝)때 인구 1억 8천만]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원리가 바로 삼신사상에서 나온 배달도, 풍류도 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것으로서 그 근본 경전이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기독교에 구교·신교가 있듯이, 단군교(대종교大倧敎)는 구교요, 천도교와 그 외 민족종교는 신교, 또는 전자를 앞 동학(前東學), 후자를 뒷동학(後東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고유의 현묘한 도는 우리 역사와 함께 1만년 대장정(大長征)의 노정을 걸어 오면서 유·불·선 3교의 뿌리가 됐고, 그 3교의 정신을 이미 포함하였으면서 다시 그들의 사상을 통합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수수관계(授受關係), 또는 상생융화(相生融化)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고려때 불교가 중시되고 송학(宋學)이 들어오면서 국선도는 상층계급(임금·귀족·관리·학자·지식층)의 불교와 실용지학(實用之學)에 밀리고, 조선조가 유교를 숭상함으로써 완전히 서민대중의 신앙으로 지하화·무속화하여(삼시랑·서낭당·신앙·동물·서물 등 정령숭배, 풍수지리,도참설 등과도 연계)잠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상층부 지배계급으로부터 소외되고 천시를 받으면서 상극(相克)과 원한(怨恨)의 오랜 악몽의 시기를 거친 후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 동학혁명입니다.

종교적·역학적 예언가들에 의하면, 동학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동학교조 최수운이 증산(甑山)의 예언자·선지자로 왔다는 한계성이라고 합니다. 증산이 신인(神人)으로 강세함으로써 신(神) 한웅이 신인(神人)으로 강세하여 곰 겨레의 여인과의 사이에 단군이 탄생되는 (신의 아들-천손)단군의 신인상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최수운은 증산의 강림을 예언했고, 증산은 원시반본과 해원상생(解怨相生)을 외침으로써 절망과 좌절속에 빠져 있던 한민족에게 밝은 미래와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약속했습니다.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돌아 가셨으나 민족의 꿈을 펼쳐 보였고, 동학사상을 완성하였으며, 이는 고구려의 다물정신과 신채호(申採浩)의 낭교(郞敎)와 선교의 부활을 뜻하고 있습니다. 부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維我獨存)’, 예수는 ‘내가 바로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외쳤으며, 수운은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人乃天]’, 증산께서는 ‘내가 하느님이다’하고 외쳤습니다. 수운은 예언자요, 증산은 묵시론자입니다. 이분들이 민족혼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한민족 신앙의 정통성을 다시 한번 간추려 보면 한임-한웅-단군으로부터 국선화랑-서민대중-동학(천도교·대종교)-증산의 맥락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 선맥(仙脈)의 기본이 되는 사상의 저변은 이원론적 일원론(神人合一思想)과 삼위일신(三位一神)의 한사상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한사상의 뼈가 되는 삼신에 대해서 알아보고 살이 되는 세 경전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삼신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삼신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한임·한웅·한검 세분이십니다.
중병의 환자에게 백가지 약이 효력이 없을 때에 우리들은 ‘한얼님네!’, ‘신령(神靈)님네!’하고 한얼님께 치성(致誠)드리면서 빕니다.
여기서 ‘얼’이라는 말은 심성(心性), 또는 이성(理性)과 이념(理念)의 통일체(統一體)로서 신(神)·정신·넋 등을 의미하며, 얼떨떨하다, 어리둥절하다, 얼빠지다, 얼간이, 민족 얼 등과 같습니다 [어른, 큼, 임금도 같은 의미임:어라하(瑕), 어륙하(夏), 자네 어른 어디 가셨나?]. 그래서 한얼은 한울의 본-얼 (本-얼), 온누리의 온-얼[全體-얼]이 됩니다.
세상에 한얼님의 조화(造化)아닌 것이 없습니다. 한얼님이 온 누리 온갖 것[世上萬物, 萬事]을 만들어 되게 하는 조화님[造化主, 創造主]으로서 한임(桓因)이요, 신령님이 꿈에 현몽(顯夢)해서 가르쳐 주셔서 산삼(山蔘)을 캐듯, 한얼님은 가르쳐 되게 하는 교화님[敎化主]으로서 한웅(桓雄)이요, 제천단(祭天檀)을 만들어 제사를 올리고 한얼님이 내려와 이 세상과 나라를 잘 다스려 주십사고 빌 듯이, 한얼님은 다스려 되게 하는 치화님[治化主]으로서 한검(桓儉)입니다.

그리하여 한님은 한울(온 누리)의 창조주로서 한얼아버지[天父]요, 한웅은 한울의 교화주로서 한얼스승[天師]이요, 한검은 한얼의 치화주로서 한얼임금[天君]입니다. 곧 한얼님은 한님과 한웅과 한검 세분이시니, 세분이 곧 한얼님이십니다. 그래서 ‘삼신 한얼님’이라 합니다. 한얼님이라 부르는 것이 옳으나 우리가 평범하게 부르는 하느님의 뜻으로 삼신하는님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한얼님’하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인격신관(人格神觀)적인 어감(語感)과 뜻이 있고, 하느님하면 자연신관(自然神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하고 부르기 편하게 호칭한다해서 어긋나는 일은 아니라 믿습니다.《삼일신고》와 《회삼경(會三經)》이라는 책에 의하면.

‘한얼은 한울의 임자시니, 우이 없는 첫 자리에 계시사, 고이(덕)가 넓으며, 슬기가 밝으며, 힘이 굿세으사, 얼굴없이 만드시며, 말씀없이 가르치시며, 하염없이 다스리시니 크도다, 한얼의 길이여! 곧 하나요 곧 셋이 되어 몸[體]을 함에 더 없는데 이르시며, 씀[用]을 함에 맞끝[終末]없음을 다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한얼을 역할에 따라 나누어 말하면 3신(三神)이요, 3신들을 합쳐 말하면 한얼입니다. 그래서 한얼사상이 삼신사상이요, 한얼숭배가 삼신숭배이며, 한얼신앙이 삼신신앙입니다.

배달 임금 한배검이 한얼자손으로서 고이와 슬기와 힘이 한얼같이 크고 밝은 사람인 한얼사람이므로, 이분을 ‘한배(한아배)’라 하고, 또 이분이 배달 나라의 임금이므로 ‘한배검’이라 불렀습니다. 한 옛적 배달 사람들이 한얼은 한울의 아버지요, 스승이요, 임금으로서 한울[天]의 3검[三神]이요, 또 한배검은 사람의 아버지요, 스승이요, 임금으로서 사람의 3마루[三宗, 根本]로 알았으므로, 그들은 한울[天上]에서는 한얼이요, 땅에서는 단군 한배검이 제일 으뜸인 줄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군 한배검을 한얼과 같이 숭배하던 나머지, 결국 한울의 임금인 한검을 배달의 임금인 한배검으로, 또 바꿔서 이것을 저것인 양으로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울의 3신(그중의 한 분이 한검)인 한얼과 사람의 3마루[三宗]인 한배검은 다르지만, 한 옛적부터 배달 사람들이 한배검을 지극히 높이고 섬기던 나머지, 한배검을 땅위에 내려온 한검으로 알고 받들어 한배검의 권위를 한얼의 권위까지 높여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얼숭배와 한얼신앙이 단군숭배와 단군교신앙이요, 또 바꿔서 이것이 저것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한얼가르침[(=神)敎]이 곧 단군 가르침[檀君敎]이요, 한배가르침 [   (=神)人敎=한얼사람 가르침=倧敎(사람마루 가르침) ∼大倧敎]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한얼이 한울(온 누리)에 대하여 한임·한웅·한검의 3위1신이듯이, 한배검이 사람에 대하여 아버지·스승·임금의 3위 1체이었습니다. 이것을 삼일원리(三一原理)라 하는데 한얼·3신신앙이 지배하던 고조선에서 정치제도도 이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신한(辰韓)·말한(馬韓)·불한(發韓·弁韓)으로 세 임금을 세워, 단제(檀帝·檀君)께서 신한, 곧 대왕(大王)이 되시고 마한, 변한이 좌우의 부왕(副王)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한(단제)께서 변한의 도읍에 가서 계시면 변한이 신한의 도읍에 가서 자리를 지켜 주고, 마한의 도읍에 가 계시면 마한이 신한의 도읍에 가서 자리를 지켜주기도 하였습니다【 고려시대까지도 임금이 개성 평양 경주 3곳에 4개월씩 순주(巡駐)하였음】.

■ 中央에는 東·西·南·北· 中 五部에 五加가 있어서 五個 國務大臣, 신가가 五가의 首位, 전시에는 中前後左右의 五軍, 신가가 中軍大元首, 기타 4가가 4元首로 出戰, 윷판이 五가의 出陳圖와 같음. 刀(돗가), 介(개가), 乞(신가), 兪(소가), 毛(말가)

이와 같이 3신사상에 입각하여 3한·3경(京)·3조선이 있었는데, 우리의 본성(本姓)인 3신사상이 강할 때는 나라가 흥했고, 3신사상이 파탄되면 나라도 망했던 것입니다. 신라도 박혁거세(밝-갖-한)는 아버지요, 둘째 남해차차웅(次次雄==스승)은 스승이요, 셋째 유리이사금(尼師今=잇금=임금)은 임금으로서 부사군(父師君), 곧 3신사상입니다. 이를 표로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에는 삼일원리에 의한 응용이 많이 나옵니다.
3·1 광복의거(독립운동), 삼국통일, 후삼국, 등등… 강화도 정족산(鼎足山)에는 단군의 아들 3인[三人:부루(夫婁), 부소(夫蘇), 부우(夫虞), 부여(夫餘) 네 아드님 중 세 분]이 쌓은 삼랑성(三郞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삼신신앙에서 3신선(三神仙=三仙人), 삼랑(三郞), 삼시랑(三侍郞), 삼시랑할망구(三神郞 할머니:三南地方), 삼승할멈(제주도), 3신할머니(서울), 삼신상(삼시랑 床), 삼신밥(삼시랑 밥), 삼신국(삼시랑 국), 삼시각질(三神各位? 三神각시질?, 삼시랑께 치성드리는 것을 함경도 회령 지방에서는 이렇게 부름) 등의 용어와 풍습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외 3신독(3신 단지), 삼신쌈지(삼신 주머니), 삼신 좋은이(三神 좋은이→상산조으니: 함경도 회령지방) 등 여러 풍속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서낭당[仙郎堂, 城隍堂, 壇]도 3신 신앙에서 나온 풍습입니다.
앞에서 삼일신고와 회삼경을 인용했을 때, 몸[體]과 씀[用]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3위 1신에서 1신은 체요, 3위는 용입니다. 그 작용을 한눈으로 보기 위하여 이원론적 일원론과 함께 도식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원효가 대승(maha)을 정의하는 가운데 무한수적 '한'을 풀이한 것을 보면

크다고 할까, 아니 어느 구석진 곳이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고
작다고 할까, 아니 어느 큰 것이라도 감싸지 못함이 없다.
있다 할까, 아니 그 한결같은 모습이 텅 비어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이리로부터 나오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감히 이를 대승이라 한 것이다.(이기영 ≪원효사상≫).

이러한 '한'의 모습을 삼일신고는 '없는 데가 없고 [無不在],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不容]' 곧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 무소불능(無所不能)인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안으로부터의 어떤 분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분열이 되어서 금방 파국이 날 것 같으면서도 곧 한 덩어리가 됩니다. '온'과 '낱'은 '한'의 양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철학에서 통일성의 묘(妙)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의 그림에서 '동(動)'중의 '한'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여기서 '한'은 한 과정으로써 '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과정의 연속적인 작동을 의미하는 동작개념(動作槪念)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한'은 동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게 됩니다.
즉 과거부터 만들어왔고[旣作: Did · Made · Have done · Have made · Have been doing · Have been making], 현재도 만들고 있으며[作中: Do · Make · Be doing · Be making], 앞으로도 만들 것입니다[作: Will do · Will make · Will be doing · Will be maiking).

곧 '한'이라는 말은 광범위한 명사적인 뜻 이 외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되게 하는[成],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움직여 이루는 동사적 의미와 이미 이루어진 모든 동작과 명사[動名祠]를 형용하는 형용사적 의미(끈끈한 유기체)를 포함하는 한없이 오묘한 언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한마디 속에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진의 무궁한 시간관념과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무한한 공간관념[축소, 확대 마찬가지 : 한알-태양, 한울-인세(人世)], 정서관념(恨 : 한이 많던 적던, 있던 없던 간에 만들어진다), 양관념(限 : 양이 많던 적던 간에 만들어진다), 명암 · 색상 관념(한, 환 白 : 蒼蒼玄玄간에 어둡던 밝던 간에 만들어진다)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양 사상과 같은 분석적(分析的) 분절(分切·Segment)이 아니고, 연속적 유기체적 흐름(flow)속에 모든 것이 내포되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제나 표현방식이 영어같이 분석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비시원적·비분석적·비이원론적·유기체적 언어입니다. 그 대신 포용성이 크고 조화성·통일성이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언어나 풍습이나 건축양식이나 문화나 모든 것이 이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 사람들의 과학적·합리적·분석적 사고방식과 편리한 생활양식을 한사상으로 걸러서 수용하는 것이 매우 좋은 일이나, 오늘날처럼 언어나(영어), 사상이나(종교), 문화(천박한 서양문물)를 일방적으로 봇물 틔워 넣듯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사상과 기독교사상은 서로 삼투작용을하여 차[滿]야 하고, 오래 참[忍]아진 상태에서 새로운 참[眞]이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주객(主客)은 분명히 지켜져야 합니다. ‘한’이 일방적으로 오염되어 썩은 물이 되어서 맑아질 수 없거나, ‘한’을 버리고자 하는 날에는 이 민족은 존재하지 못하게 되지만 ‘한’이 왕성하면 나라와 민족도 왕성해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이 ‘한’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토대로 ‘한’의 뜻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명사 및 형용사: 廣, 高, 長, 統, 正, 久, 東, 初(始), 王, 全, 天, 中, 包 容,
                       白(明), 衆, 同, 大略, 多, 大, 一, 元, 上, 韓, 桓
동사: 作,成,動,爲 ┏時空관념        ┓
                                   情緖관념        ┃       作動의 과정중에
                         ┃量 관념          ┃       이미 내포되어 있음
                         ┗명암색상관념  ┛

우리말의 특징
말에 대해서 나왔으니 말이지만, 미국에서 여성해방운동(Woman power) 이 나온 것도 언어적 이원성의 한 표출입니다. 한국에서는 언어적으로 여성이 상위입니다. 밤낮[晝夜], 엄마아빠[어미애비[父母]], 암수[계집사나 [男女]], 년놈, 들락날락[出入], 오간다[往來]등과 같이 여성어가 남성어보다 앞에 있으며, 우리는 ‘사람’으로서 남과 여를 총칭하는데, 영어는 ‘man(남자)’으로서 남녀를 총칭합니다. 즉 여자는 ‘woman’이라 하여 한낱 남자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의 갈빗대를 한 개 빼서 여자를 만들었으니까요. 중국어만 해도 남존여비 언어입니다. 앞에서 보셨지요. 남성적인 말이 전부 앞에 나옵니다.

또 우리말에는 ‘우리’라는 두레 공동체로 생각하지 나(I)와 우리(We)를 구분 짓지 않습니다. ‘우리 아내’, ‘우리 아버지’하지 ‘내 아내’, ‘내 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말에는 참 많습니다. 서양은 그래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Group Dynamics’라 하여 소외 극복의 철학이니, 뭐니 해서 온갖 학문적 분화와 세분이 심합니다.
일본사람도 그런 면에서는 우리에게 뒤떨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두루뭉실한 우리를 보고 비웃어 ‘엽전’이라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신(神)의 대명사는 He이나 요즘은 He/She God이라고 한다고 함. 우리말은 나와 너, 너와 남, 네 것과 내 것, 몸과 맘, 알과 얼, 사람과 사랑과 살, 붸[胎]와 뷔[空], 있과 잇, 참[滿,忍,眞], 아이[兒]와 알[卵]등 발음 자체가 두레 공동체적 유기체적 언어임].

옆길로 나간 김에 조금 더 하겠습니다. 이제 합바지, 엽전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시겠지요, 이래도 합바지, 엽전이라는 말이 듣기 싫습니까? 나중에 김상일 박사의 뫼비우스 고리와 클라인 병에 대해서 실제로 종이를 접어가면서 실습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습을 해보면 아까 그 그림과 같은 태극의 원리와 비시원성을 이해하실 것이며, 클라인 병의 불가능성같이, 완전무결한 사상의 불가능성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한사상도 한사상적 변증법에 의하여 발전함).

그리고 서양사상의 과학적·합리적인 면은 우리가 흡수해야 되지만 그 사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며, 재갈에 물리지 말고 그것을 흡수·소화한 후에는 반드시 우리의 한사상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사상의 우열을 평가해 본다면 한사상은 선생이고, 불교는 우등생이며, 유교는 합격생이고 서양사상은 재수생밖에 못 된다는 걸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재수생이 제일 힘이 세느냐 하고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만, 그것은 아직 제일 젊고 모험적, 도전적인 자세 때문입니다.[역(易)에서는 기독교가 남방(南方) 7 화의 여름 절기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함].

이처럼 한사상은 그들을 가르쳤고 제일 나이가 많은 꼬부라진 상 영감인데도 지금은 둔갑을 해가지고, 중 영감, 초로 영감들보다 제일 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우리처럼 둔갑할 줄도 모를 뿐 아니라 아직 둔갑할 나이도 안 됐으므로 우리가 안 거들어 주면 그냥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지요. 둔갑이라는 것은 한사상적 변증법에 의하여 이중부정을 할 줄 알게 됨으로써 이원론을 극복하고 상대성·조화성·통일성을 달성하여 인류 평화와 홍익인간의 구원사상을 펼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표로서 간단히 뼈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삼신신앙과 한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대해서 개념이 섰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다음은 이러한 신앙 및 사상체계가 종교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한사상을 논하는데는 최치원(AD 857년)의 난랑비 서문[난랑 화랑(鸞郞花郞)의 묘비석에 새긴 글]은 약방에 감초격으로 인용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신묘(神妙)한 길[道]이 있는데, 이것을 배달길이라고 한다. 이 종교를 설치한 근원은 이미 선사(仙史)에 자세히 적혀 있는데 진실로 3종교들을 포함한 것으로서, 뭇 삶을 접촉해 감화시킨다[接化群生]. 그리고 또 화랑들은 집에 돌아와서는 어버이에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니 이는 공자의 취지요, 하염없이 일들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행하니 이는 노자의 종지(宗指)요, 또 모든 악함을 짓지 않고 모든 착함을 받들어 행하니 이는 석가의 교화다.”

곧 배달도[檀君敎]는 노자(老子)의 선교(仙敎)와 석가의 불교와, 공자의 유교등 세 종교의 근본교리와 원리를 제 속에 지니고 있는 통일근본교(統一根本敎)입니다.

노자의 선교를 신선도교(神仙道敎), 또는 도교(Taoism)라 하는데, 이름없고 하염없는[無爲] ‘도[道의 조화자리는 無]’가 자연 만물들을 ‘낳’고, 자연 만물들은 저마다 제 도를 얻어 자기의 본성을 삼는데 이 본성이 곧 덕(德)으로서 이 덕이 자연 만물들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 혹은 신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주로 천지만물을 낳고 만드는 아버지이지, 결코 천지만물을 가르치는 스승이나 다스리는 임금은 아닌 것입니다. 곧 3신·한얼 단군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자는 유교의 어짐[仁], 옳음[義], 예절[禮], 지혜[智], 신의[信]등 인위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자연의 도덕을 주장했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 자연의 길에 따라 죽어 자연의 길로 돌아감이 사람의 참된 삶과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처[佛陀:Budaha=覺者]의 본 뜻은 자기를 깨닫고[自覺], 남을 깨우쳐주고[覺他], 또 깨닫고 행하기[覺行]로서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입니다.역시 단군교의 일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승을 사바세계라하여 악행을 짓지 않고 번뇌와 무명(無明)으로부터 풀려 나와 사바세계를 벗어나서[解脫], 삶도 죽음도 없는 적멸(寂滅)의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감이 불교의 최고요, 최후의 목적입니다.

유교의 이상과 목적은, 사람이 자신을 수양하고 집을 지키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계를 평화롭게 함입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유교에서는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이 제일 높습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의 배달도, 곧 단군교인 대종교(大倧敎)의 신앙의 대상은 3신·한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한 사상은 원래 동양의 선·불·유(仙·佛·儒), 세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불·유·세 사상이 들어와서 한사상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한사상 속에 수용 되 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념과 목적은 홍익인간으로서 크게 사람을 유익케 하기 위하여 고이와 슬기와 힘이, 한얼과 같은 ‘한얼사람[神人=倧: God Human]’인 참 사람이 되고, 만선(萬善)·만덕(萬德)의 ‘한’나라와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배달도요, 그 가르침이 배달교, 곧 단군교인 것입니다.우리가 단군 한배검의 가르침을 받들어 ‘사람 도리’를 다한다면 사람마다 한얼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다음 글들이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온 누리와 온 이치를 다 만드는 한얼님으로부터 ‘사람과 만물이 한가지로 참 함을 받았는데, 그것은 성품[본성]과 목숨과 정기이다.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또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다’, ‘자기 본성에서 한얼의 씨를 찾아라(自性求子). 너의 머리골 속에 내려와 계시니라(降在爾腦)’ 사람마다 ‘참 함을 돌이키면(완전히 되 실현하면) 한얼이 될지니라’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한얼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아 되었고 자신 속에 한얼을 씨앗[種子]으로 곧 ‘한얼씨’로서 가졌습니다. 만일 우리가 단군 한배님께서 가르치신 ‘한얼 말씀’과 사람도리를 잘 실행한다면 우리는 자신 속에 지닌 한얼씨를 완전히 발전시켜 한얼과 같은, 한얼사람인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 설명한 한얼과 온 누리와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의 3위 1신에서는 세 검·한 몸에서 세 검이 With 개념인데, 서양의 3위 1체는 종속 개념이다. 즉 아버지는 세계 이전(before)의 존재로서 아들은 그 다음의 위치에 종속되어 있다. 이원론에서는 한 실체와 다른 실체가 동시에 있을 수 없다. 틸리히의 새로운 삼위일체관은 大德 [Union·조화], 大慧 [Meaning·의미], 大力 [Power]과 같이 대조하여 설명할 수 있겠다.

삼신이 천신교[天神敎·신교(神敎), 고신도(古神道)→배달도·풍월도(風越道)]의 뼈[骨]라면 살[肉]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3대 경전은 한민족이 유구 6천년간 간직해온 원시경전으로서, 논리성·철학성·종교성이 뛰어나게 고차원적인 세계에서 유(類)가 없는 최고의 보전(寶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그 경전들의 내용이 심오하여 여기서 간단히 풀어서 설명드릴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참고할 자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李裕立 著 大倍達民族史 (白卷)
    · 宋鎬洙 著 韓民族의 뿌리 思想
    · 金相一 著 한철학
    · 崔載忠 著 民族의 뿌리(우리 얼, 우리말, 우리 글)
    · 宋鎬洙 번역 개천경 · 大倧敎 經典
    · 朴容淑 著 韓國의 始原思想
    · 한규성 지음 천부경과 도의 사회
    · 金白龍 著 天符經 源典

그 외에도 많은 저서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통치원리가 있었음으로 해서 상고시대 4000년(배달국 1600년, 단조·부여 2400년)과 고구려·발해시대 1000년간 합해서 5000년간 대국(大國)이 웅비할 수 있었고 이 대 강역과 대 국민을[14세 고불제(古弗帝·BC 1700년 경)단군 때 인구 1억 8천만 명] 다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의 치법(治法)은 유가(儒家)의 덕치(德治)와 법가(法家)의 법치(法治)보다는 도치(道治), 곧 이치[理治:이치(理致)로 다스리는 것] 시대였습니다.
이 경전들의 이치(理致)가 너무 조리정연하고 현대적 과학 지식도 포함하고 있어서 혹자들은 이 경전이 후대에 가필(加筆)된 위서(僞書)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인데, 사실이 그렇지 않은 진서(眞書)임이 판명되고 있습니다.

천부경(天符經)은 81자(字)로 되어 있어서 외견상 간단해 보이나, 그 81자에 지금까지 설명한 한사상의 진액(眞液)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단히 소개만 하겠습니다

天符經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化三
  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還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삼일신고
천부경이 철학[造化經]이라면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신학[敎化經]이고 참전계경은 윤리학[治化經]입니다. 천부경 81자에 철학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듯이 삼일신고는 천훈(天訓) 34자, 신훈(神訓) 51자, 천궁훈(天宮訓) 40자, 세계훈(世界訓) 72자, 진리훈(眞理訓) 169자를 합하여 총 366자에 신론·인간론·천국론·우주론 전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삼일신고도 천부경과 같이 한임 천제(天帝)의 구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본 내용은 집일함삼 회삼귀일(執一含三 會三歸一)의 원리로써, 조금 전에 그림에서 보신 3대, 3신, 3진 등이 이 신고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한사상의 정수(精髓)라고 일컫는 너무 값진 보전이라 그냥 지나가기 아쉽습니다만, 여러분이 앞에 소개한 책자를 볼 것으로 믿고 마찬가지로 참전계경(參佺戒經)도 간단히 소개만 하겠습니다.

참전계경
참전계경을 줄여서 전계라고도 하는데 역시, 천경이나 신고와 같이 한웅천황 개천시에 이미 선존(先存)하였던 것으로 여러 고기에서 360여사(餘事)이니, 366사(事)이니 하는 것은, 바로 366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 이 경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경전이야말로 도덕정치가 새로운 가치로 거론되는 오늘의 정치현상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는데, 이 366개 조목의 그물코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의 행(行)은 전무(全無)할 것입니다.
중국의 3강5륜(원래 우리 것임)은 전계 내용에 다 포함된 우리의 3륜구서(三倫九誓)를 옮겨 쓴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366이란 숫자는 우주의 원리에서 나온 숫자로 1년이 366(365 1/4)일, 신묘하게도 바이칼 호수의 강줄기 366개, 사람의 인골수 366개, 인체 혈(穴)수가 366개이며, 이에 따라 신고 366자, 전계 366조, 북부여 해모수의 천안궁 366간(間), 신고 366만독[讀:366만독이면 환골탈태(煥骨脫態)한다고 함→선인(仙人)] 등 자연현상[천지인이 366이라는 수리(數理)와 과학현상]을 이해한 선인(仙人)들의 지혜와, 366법리(法理)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함무라비법전 282조, 불교의 法句經 423조).

이 전계의 통치이념이 바로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이화논리로서 발해·신라 때까지만 해도 이 통치원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그후 1000년 동안 황무지 속에 버려둔 채 간직해 온 지보(至寶)중에 무가보(無價寶)인 것입니다. 이제 전계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됨으로써 우리 민족이 세계 인류에게 보답할 중요한 호기(好機)가 될 것입니다. 곧 법치의 제반 모순을 극복할 묘안(妙案)원리로 예견됨으로써 유가의 덕치와 법가의 법치를 지나서 다시 도치(도덕정치,이치)를 이룩하는데 호재(好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이 3대 경전이 바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동도입니다. 홍익인간이란 말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조화경·교화경·치화경 3대 경전 속에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우주의 창조 원리를 천부경 속에, 정신적 내재(內在)와 현상적 표면세계는 삼일신고에, 인간 행도(行道)의 치리(治理)법칙은 참전계경 속에 상세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홍익인간·제세이화라는 말이 한낱 표어에 불과한 말이 아니고, 그 말을 뒷받침하는 논리 정연한 철학과 이론서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한번 연구해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아울러 우리 나라의 모든 학교, 초·중·고·대학교를 비롯하여 각 군 사관학교·각 군 대학 및 병과학교, 공무원, 새마을 관계 학교, 사업체 교육기관 등 모든 국민 교육기관에서 이 경전들을 단계에 맞게 교육시켜, 국민 정신교육도 되고 동시에 역사교육도 될 수 있게끔 교과 과목으로 편성할 것을 촉구합니다. 서양사니 세계사니 하면서 외국 역사는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왜 제 민족의 보전은 외면(外面)한단 말입니까? 영어시간 등을 대폭 줄이고 그 시간에 우리 고전(古典)교육을 합시다.

■ 道家史觀(仙家史觀) : 본인이 강의하고 있는 이 역사서술 방식이 바로 도가사관에 의한 것으로, 우리 역사는 단군 한배검을 비롯한 삼신사상을 무시한 역사로 기록할 때에 지금의 역사와 같이 머리없는 절름발이 역사로 될 수밖에 없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에 기존 도가사서류의 古史書를 秘記라, 秘史라, 참(讖)說이라 하여 무시한데서 우리 역사의 강역이 축소되고 상고사의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민족정신을 위축케 함으로써 주체성을 잃게 한 커다란 해독을 끼쳤음. 규원사화, 한단고기, 단기고사 등은 도가사관의 주류를 이루는 사서라 하겠음. 우리 역사는 도가사관으로 서술해야만 본래 대로의 역사가 될 수 없음.

옛적 단군조(檀君朝)때의 전국제전(全國祭典)에는 논경연고(論經演誥:천경과 신고 읽기를 하고 강론했다 함)가 빠지지 않았고, 곁들여 방생(放生)과 금살(禁殺)까지 시행됐으며, 전계의식[佺戒儀式:참전수계(參佺守戒)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이 거행된 후에는 어아악(於阿樂)을 즐겼으며, 고구려 때에는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도 불렀다고 합니다. 오늘날 전국체전이 옛날 국중대회의 전승(傳承)으로서 마리산 성화제전(聖火祭典)으로 시작될 때, 누천대(累千代)로 명맥(命脈)을 이어오던 이러한 옛 의식을 부활시켜 마음까지 단련시키는 전국제전(全國祭典)으로 승화시킨다면 금상첨화의 내실있는 10월 제전이 될 것입니다. 전계의식과 어아가, 다물흥방가의 고창(高唱)으로 국민의식·사회질서·윤리관 확립에 획기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사상의 진수가 담겨있는 이 3대 경전을 중요 부분만이라도 조목조목 해설해야만 한사상을 이해할 것인바, 기실 설명해야 할 것을 형편상 소개 밖에 못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소개한 책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민족종교
이러한 한사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민족종교가 대종교, 천도교, 증산사상등 단군교맥입니다.

대종교는 홍암 라철(羅喆:1863-1916·구월산에서 자결한 순국열사)이라는 분이 1909년에 국내에서 창교하였으나 만주로 망명함으로써 근거지를 이동하여 광복운동을 하던 지사와 순국선열, 실향망명객 사이에서 민족신앙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종교입니다. 천부경·삼일신고·팔리훈(참전계경)·신리대전(神理大全)·신사기(神事記)·회삼경(會三經)·삼법회통(三法會通)을 경전으로 하고 있습니다. 광복 후 만주에서 귀국함으로써 국내에서는 타종교에 비하여 발판이 미약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고유의 민족사상을 가장 원형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천도교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서학(西學)에 대한 동학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근조[近朝:단조(檀朝)에 대응한 용어]말에 발흥한 풍운의 종교로서 의지할 곳을 잃은 서민 대중, 즉 농민·쟁이층·부녀층·서얼(서자) 등 천대받던 대중들이 부패한 왕조세력과 외세에 반기를 들고, 40만이란 동학혁명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민족자존을 외친 민족의 종교입니다. 창교주 최재우(崔濟愚:1824-1864)는 광제창생(廣濟創生)을 외치고 나섰지만 나중엔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발전됐습니다.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1870-1909)은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대성하고 기독교까지 수용한 신인합발(神人合發)로서 한민족의 민족신앙뿐 아니라 전 인류의 신앙으로 승화시키려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여 한민족의 영광과 사명을 밝혔고 후천선경, 남녀평등, 인존시대의 지상천국을 열어 보이신 분입니다.[미륵불 상제(上帝): 모든 사람이 상제가 될 수 있다는 뜻].

이에 비하여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1871-1943)의 원불교는, 천도교의 항쟁의 대중이나 대종교의 순국선열이나 증산의 천지공사 신화 같은 배경없이, 소태산 자신의 대각(大覺) 에 의하여 불교와 한사상(천도교, 증산사상)이 융합된 일원상(一圓相)으로 창교하여,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교리와 이소성대(以小成大), 사무여한(死無餘恨), 동심합력(同心合力)의 창업정신(創業精神)으로 세계에 뻗어 나가고 있는, 현실적 진리의 종교로서 행동(行動)의 종교입니다. 천도교·대종교·증산도가 유신론이라면, 원불교는 무신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더 있습니다만, 생략하고 이들 종교들의 사상적 맥락과 상호관계를 도시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전면 그림들에서 표시된 바와 같이 한사상이 제 뿌리에서 뻗어나간 외래사상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돌아온 불가(佛家)와는 순교자도 있었습니다만, 원효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대승불교화로 한집같이 서로 융화 일치했고, 그 다음에 돌아온 유가는 지배층과 지식인층의 자진 참여로 충돌은 없었으나, 종속적 모화 사대사상의 확산으로 한사상의 본성에는 해독을 끼쳤습니다.
마지막 기독교와는 어떻게 될까요.

불교와 같이 융화될 것인지, 아니면 유교와 같이 이(利)보다 실(失)이 많을 것인지, 그래서 뒤에 나옵니다만, 장문의 기독교론이 펼쳐질 것입니다. 결론은 고려나 조선조 때와 같이 한사상과 유교의 대결에서처럼 한사상이 지하화하고 유교가 판을 치던 세상은 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우리 국민들이 많이 각성했고 민족 고유의 정신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특히 한 사상이 튼튼한 심줄(힘줄;근육)을 드러내기 시작한 반면에 기독교는(유교보다 더 완고한 완력꾼이기는 하나) 서양에서부터 그 한계성을 자인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 문명에 깊이 파묻혔던 서양의 기독교는 동양의 전통과 정신세계에 악영향을 끼쳤고, 물질만능주의 식민정책은 인류 최대의 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제 기독교의 가치관과 윤리는 서양에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하여 인간의 고독을 구제하기에는 너무 ‘허약’해져 있다는 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국내의 기독교인들은 하루 빨리 감지(感知)하여 고유한 민족성과 동질성(同質性) 회복에로 귀의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일반적인 추세는 종교간의 대통일을 염원하고 있으며, 전면 그림에서도 초 종교 출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종교통일에 대한 설명은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지요

“종교 통일이란 모든 종교단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종교 교리 위에 통일된 공통의 원리를 뿌리내려 주어, 그 뿌리의 힘으로 꽃을 피워서 모든 종교가 더욱 튼튼하게 되도록 도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깨끗하다 하여 모든 짐승을 죽여 버리면 사람이 살 수 없듯이, 교리가 부족하다 하여 상이한 여러 종교를 없애버리면 완전한 종교의 문화가 설 수 없는 것입니다(鄭昌昊 著 대반증 : 새로운 인식의 장, 통일장 원리(上) P.274).” 이러한 때에 한사상이야 말로 소리도, 냄새도, 별 맛도 없으면서 대자대비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말씀이며, 한 사람의 생명을 우주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상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각각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도와 덕이 내포된 사상입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1916-루마니아, 신부)는 ‘한국의 홍익인간 사상이야말로 미래의 세계를 주도할 사상이다. 홍익인간이란 단군의 통치이념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법률이며, 가장 완전한 법률이다…내가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 나고 싶다’고 말했고, 토인비는 ‘태평양 시대의 21세기는 극동에서 세계를 지배할 사상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타골의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는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겠지요.
세계 최초의 교과서인 우리의 동몽선습(童蒙先習)에도 신인단군(神人檀君)과 한사상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삼신·한얼 사상과 단군 한배검의 홍익인간 사상은 시간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종교 철학사상이고, 공간적으로는 온 세계의 뿌리가 되었으며,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어린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알고 있어야 할 지보(至寶)의 사상인 것입니다.

세계의 어느 민족이든지 자기의 주체성을 살리고 국제사회에서 번영하려면 그 민족만이 갖는 구원(久遠)한 철학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철학과 이상(理想)없이는 민족 구성원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정열을 쏟아야 할 대상을 갖지 못함으로서 삶의 의의를 잃어버리게 되고 민족적 무기력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날 서구인들의 최대의 불행은 정열없는 사회에서 사는 정열없는 인간, 무정(無情)한 사회에 사는 무정한 인간, 곧 로보트와 같은 인간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한계성이 노정됨으로써 초래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은 일본 청년들보다 더 정열에 불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비록 ‘Hungry is power’란 이유 때문만이 아니고 한철학의 근본적 우위가 서서히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강한 민족에게는 예외없이 그 민족의 주체적 민족철학과 세계인류구원의 보편적 이상이 있었습니다. 헤겔은 독일적 기독교에 입각한 역사철학을 제시함으로써 독일 통일에 기여하였고, 제정러시아의 다니레프스키는 ‘카톨릭도, 기독교도 모두 사탄이다. 러시아 정교에 의한 인류의 교화만이 러시아 민족의 사명이다’라며 범스라브연맹의 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 사상은 막스 엥겔스의 공산주의와 기묘하게 결합하여 세계 인류 구원이라는 보편주의의 미명아래,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청교도사상과 New Frontier 정신으로 부국강병을 이룩했고,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처해 왔습니다.일본은 우리나라의 고신도(古神道)에서 유래된 신토이즘(Shintoism)이 비록 우리 본래의 하느님 신앙 같은 고차원적인 요소는 잃어 버리고 세속화 되었으나, 그래도 위력이 남아 지금의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국사관적(神國史觀的) 만세일계(萬歲一界) 천황사상을 조작하여 천황을 중심으로 한 선민의식을 고취하여 국민적 단결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 사상, 소련·중공의 공산주의 유물사관의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국민 선도(先導)기능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으며, 일본도 언제 그 날조된 역사가 폭로되어 구심점을 잃고 뿌리로부터 흔들릴지 모르는 실정입니다.

보통 지중해를 과거의 바다, 대서양을 현재의 바다, 태평양을 미래의 바다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 왔습니다. 이제 태평양 시대는 대서양 문명의 비인간화·기계화·법치시대로부터 인간해방, 자연과 인간조화, 도치시대·인간성 회복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새 시대를 주도해 나갈 사상, 그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각양각색의 정신적 기로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한배’에 싣고 홍익인간의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는 ‘한’철학의 기본 이념은 모든 사상의 최대 공약수요, 모든 정신사의 원천인 공통분모라고 보아, 갈등·번민에 쌓인 현대 인류에게 청량제같은 지표(指標)가 되고 활기에 찬 희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든 제반의 사상을 총섭(總攝)하고 있는 ‘한’철학이야말로 모든 사상의 생명이며, 포함일귀처(包含一歸處)인 것입니다. 모든 역사의 시초가 ‘한’이었다면, 지금의 사상난마(思想亂摩)의 현실세계에서 ‘평화’란 관문을 쟁취하는 열쇠도 다름 아닌 ‘한’일 것입니다.

■ 김상일 박사의 뫼비우스 고리(사각형 평면, 원통, 토루스, 뫼비우스 고리 : 3차원적 입체)와 클라인병, 한옷 바지 원리와 한사상, 0.1    數理 원리를 참고할 것.

■ 李乙浩박사의 ‘한’에 대한 유·불·도 3교의 견지에서 본 내용

   儒家   :  二而一            한임과 한웅 父子二人  : 1+1=1
                                     父慈子孝 → 父子相親   :  父爲子綱(中國)
   佛家   :  1卽 多             한웅과 1伯 2師(風白, 雨師, 雲師)  : 1+α=1
                1卽 一切         率徒三千
                萬法歸一心     君義臣忠→君臣總和  :  君爲臣綱(中國)
   道家   :  羽化而登仙      神雄과 熊女   :  1+1=1α
                                                 夫愛婦情→ 夫婦相應
                                      夫唱婦隨→ 夫婦同體  :  夫爲婦綱(中國)

 단군 한배검의 八條敎則

    1. 한얼님은 지상(至上)한 곳에 계시고 가장 귀한 신이시니, 비로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사를 주재하시니라.
    2. 한얼님은 천궁(天宮)에 계시나니 그곳은 크게 길상(吉祥)하고 광명하여 신향(神鄕)이라 이르나니라.
    3. 한얼님의 아드님으로서 천궁(天宮)으로부터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하강하신 우리 황조(皇祖)께서는 나라를 세우시고 인민을 가     르치신 뒤에 조천(朝天)하여 신향(神鄕)으로 돌아 가셨느니라.
    4. 모든 인민은 오직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물리쳐서 천범(天範)을 지킬지어다. 그리하면 족히 신향(神鄕)에 갈 수 있느니라.     (…단군의 신관은 기독교의 신관과 거의 일치하며 더 우수한 데가 있다.)

단군 한배검의 天範

    1. 너희는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아라. 아픔은 크나 작으나 마찬가지이니, 서로 사랑하여 모함하지 말고 서로 돕고 서로 싸우지 말     아야 집과 나라가 흥할 것이다.
    2. 너희는 소나 말을 보아라. 그것들도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으니, 서로 양보하여 빼앗지 말고 서로 훔치지 말아야 집과 나라가     융성할 것이다.
    3. 너희는 호랑이를 보아라. 너희는 사납게 달려들어 무찌르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라.
    4. 너희가 만약 꽃밭에 불을 지르면 꽃이 장차 시들어 버릴 것이니 신이 노할 것이다. 너희는 넘어지는 자를 부축하고 약한 자를     능멸하지 말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비천한 자를 모멸하지 말 것이다.
    5. - - - - - - - - --

■ 어린 딸아이들이 머리털에 빛깔 있는 실로서 매는 단기[檀祈, 檀戒, 당기, 댕기] 드리는 법은 단군 한배검께 고[戒]하고 빈[祈]다는 의미와 표시다. 이것은 단군께서 처음 백성들에게 머리칼을 묶는 법과 사람의 본성을 닦고 지키기를 가르쳐 준 까닭이라 한다. 또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살기, 복되기, 건강하기)글자를 써서 디리는 것은 단군께 이 3가지를 주십사고 비는 의미다. 喪을 당했을 때는 흰 댕기를 디린다. 웃옷의 깃[領]우에 흰동정을 붙이는 것은 단군 한배검께서 내리신 한얼뫼[天山], 곧 한밝뫼[白頭山]를 기념코자 함이며 백의민족의 상징이다.

한국의 인상(印象)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영혼의 안식처같이 포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산수(山水)와 인정이 그렇고 사상이 그렇다 한다. 우리의 전통과 심  성(心性)은 우리의 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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