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풍, 삭혀야 할 마지막 태풍- 국풍의 맞바람으로 잠재우자면

한국사는 바로 그 민족종교인 선교(仙敎)의 역사입니다. 도가(道家), 곧 선가(仙家)의 종주국으로서 한국사는 바로 인류사인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인 서구문화가 판을 치는 현실속에서, 삼국시대 이전을 무속종교시대,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때까지를 불교시대, 그리고 지금을 준 기독교 문화국이라고 정의하면서 기도교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방자하고 오만한) 견해가 있는데, 세계종교 아니면 무속이라는 생각대로라면, 한국은 외래종교의 쓰레기통밖에 안 됩니다. 신시·고조선·고구려·발해 5000여 년의 장대한 역사와 방대한 강역을 통치하였다면 그 비범한 통치원리가 어찌 무속뿐이겠습니까.
서선자(西仙子)는 자기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당과 지옥을 나누지 않으셨고, 영과 육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울분을 대신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이라고 외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 입성의 메시아 시위(Messiah demonstration)를 벌렸습니다. ‘가이사(이스라엘의 지중해 연안에 있던 ‘가이사’라는 지명.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던 곳)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이 말씀으로 그는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고 로마의 압정과 유대의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정의를 주장하므로써 강력한 정치적 발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34세의 젊은 나이로, 힘없는 사람의 힘없는 죄를 대신하여 무지한 자의 무지의 죄를 대신하여 승화하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두 사람의 강도범은 강도가 아니라 그와 같은 정치범이었습니다. 그의 짧은 생애는 끊임없이 정치권력·종교권력과 마찰·갈등을 빚은 역사였습니다. 그는 역사적 예수였으나, 바울의 헬라사상에 의하여 믿음의 그리스도로 전신(轉身)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내세중심과 영육의 분리로 빠져[二元論]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예언자적 행동철학은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맥 빠진 영지주의(靈知主義)만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희생과 사랑과 봉사, 성령과 믿음과 희망은 훌륭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이나, 한민족은 원래 심성 바탕이 곱고 착합니다. 예의가 바르고 충효할 줄 압니다. 유무상통 이웃을 사랑하고 홍익인간할 줄 압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강인한 정신력이 이미 단련되어 있습니다. 쓰러져도 절망하지 않고 칠전팔기(七顚八起) 재기합니다. 그런 구조가 되어있는 우리에게는 천당과 지옥 논리는 짠 맛 잃은 소금입니다. 영혼과 육체는 이미 수많은 시련으로 단련되어 있습니다. 단군은 지옥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유색인종 차별과 무자비한 타민족 살상, 비정한 개인주의, 백인 우월주의, 그것이 평등과 사랑의 극치입니까? 그래서 죽으면 천당을 갑니까? 이젠 술 먹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잘 믿다 죽어 천당가야 한다는 등의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한국 사람들을 감정으로 열광시켜 미치게 할 수 없으며, 무슨 무슨 서양신학으로 감정을 메마르게 할 수도 없고, 그런 방식으로는 비대성장과 맹신으로 오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한민족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뿌리의 움틀거림을 바랍니다. 커다란 용트림을 요구합니다. 서구 문화를 형성시키는데 실체적인 역할을 해온 기독교에 대한 재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이원론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나왔으며, 두 사상 역시 50보, 100보 차이로써 기본 철학은 유물적이며, 둘 다 정복자의 문화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하루 빨리 서양 예속사관에서 탈피하여 신학적 독립을 쟁취해야 하며, 종교 우월주의를 버리고 정신혁명을 함으로써 원효와 같은 선각 신학자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양의 독선적·배타적 계명과 계율을 거시적 안목으로 비교 평가할 줄 알아야 하며, 자기 종교의 현 주소도 알지 못하는 채 순전한 아집과 독선, 편견과 오만으로 대립 반목하다가 저승으로 가고 마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민족감정에 수용되어야지 거슬리는 언동은 질색입니다. 어찌하여 국조를 부정하고 나라의 역사를 송두리째 남의 역사로 대치하려 듭니까? 한민족의 핏줄 속에 용해되어 있는 삼신신앙을 샤머니즘이며 우상이라는 한 마디로 단정하여 능멸해 버리거나, 정령숭배·주술무속·기복신앙 등만 눈에 보이고 단군의 고차원적 지고(至高)한 사상에는 소경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한국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른 종교를 악마·사탄시하고 미신과 우상숭배로 몰아쳐 버리는, 일부 몰지각한 크리스챤들이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원래 예수님이 바라던 바도 아닐 것입니다. 그는 이 땅의 역사와 전통을 파괴하고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섬기는 종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밟고 도리어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 7장 6절》”

이 강의를 하는 내가 개나 돼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서양 종들이 개 돼지가 될 것인지, 양쪽 다 개 돼지가 안 될 수 있을는지, 그것은 역사가 심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서양의 진주를 내 나름대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이 원래는 거룩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존경합니다. 이제 그들이 한 민족의 진주와 거룩한 것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현묘지도를 알아보십시오. 필연코 거대한 광명이 될 것입니다.

서양종교가 오늘날 같이 이렇게 자란 것도 조선조 말엽의 의지할 곳 잃은 천대받던 서민대중이 블랙 홀(Black Hole)에 흡인되는 성군(星群)처럼 소리 없이 흡인 되고, 남북분단과 미군정, 이승만 집권, 6.25 등의 시대적 배경에 영합된 것이 큰 원인 중에 하나이나, 무엇보다도 우리 고유의 숭천(崇天)·경조(敬祖)·애인(愛人)의 하느님 숭배사상이 문명론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기연(旣緣)으로 일치하여 된 것임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12세부터 24세까지 인도, 티베트에 유학하여 동양사상에 접하여 브라만교 승려들과 요동(遼東)의 최고 성현 멘구스테로부터 수학받았음. 때의 바퀴는 한 번 돌아 인류는 보다 높은 사상의 단계에 서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알 맞는 옷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자들은 좀 더 커다란 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成約 56-11.13 멘구스테》].

동시에 질식상태에 빠졌던 ‘한’사상도 기독교의 하느님 신앙에서 산소 호흡을 받고 기사회생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든 기독교가 들어 와서 잠들었던 우리의 하느님 사상을 일깨워 주고 한글 사용을 일반화 시켰으며, 자유주의 평등 박애사상을 고취시키고 과학문명을 이식한 것은 큰 공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토착화 됐다고 강변(强辯)하더라도 그것은 언어 도단입니다. 몸이 서양을 향해서 서 있는데 고개만 돌려서 될 일입니까? 민족의 뿌리사상을 확실히 이해하고 고유의 조상을 바로 평가하십시오.[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조상이 아니고 단군 한배검이 고유의 조상이며 여호와가 하느님이 아니었고 원래 고유의 삼신이 하느님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함. 여호와 곧 야훼신(神)은 유대민족의 민족신으로 유대민족을 주재(主宰)하는 군신(軍神)임. 예수의 하느님은 여호와인가, 계시록 (20-11)의 백보좌하느님·백보좌서신(白寶座西神)인가?].

단군을 부정한다면 민족과 조국의 분열을 조장하고, 민족과 조국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광신자나 일제 식민주의자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우리의 역사가 아브라함이나 다윗의 역사입니까? 태초에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역사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에게도 단군을 우리 원조로 보내셔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제 민족과 씨족의 시조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나라와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이치와 사실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이 1천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아직도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이 압도적으로 차지하고 있으니 기독교계가 편견과 오만을 버리고 아량과 포용과 공존과 조화의 방향으로 국민의 마음을 수렴해야 할 것입니다. 민족사 회복에 동참하시고 웅비하는 민족사 창조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너희 생은 오직 부모로부터요, 부모는 하늘(하느님)로부터 내려 오셨으니, 오직 너희 조상을 잘 섬긴 연후에야 하느님을 경배 할 수 있느니라《檀君世紀》.

‘제 조상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남의 조상을 갖다 놓는 환부역조(換父易祖)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증산께서는 외쳤습니다. 한심하고 슬픈 작태는 이제 그만 중지하고 성명서라도 하나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맺었으면 ‘감사합니다’하고 제 조상에게 제사도 지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아 어아, 우리들 조상님네 크신 은혜 높은 공덕
배달나라 우리들 누구라도 잊지 마세.
어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이고 나쁜 마음 과녁이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니 활줄처럼 똑같으며
착한 마음, 곧은 화살, 한 맘으로 똑같아라.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되어
과녁마다 뚫어지고, 뚫는 마음 착한 마음,
눈[雪]과 같은 악한 마음.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라
좋게 뭉친 같은 마음, 배달나라 영광일세.
천년 만년 크신 은덕, 한배검이시여!
한배검이시여! 《檀君2世 夫婁의 於阿歌》

전장으로 나가자, 우리 이 노래 부르면서 전장으로 나가자.
한국청년들이여! 우리가 광복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겉으로만 독립했지 안은 아직도 식민지 노예상태다.
전장으로 나가자. 어아가 부르면서 싸움터로 나가자.

광복지사들이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상해에서 미주에서 몸과 마음으로, 때로는 철혈(鐵血)로서 싸웠듯이, 우리들은 이제 심혈(心血)로서 싸워 완전한 광복을 쟁취해야 한다. 황하문명의 주인공을 알고 중국 기자와 한국 기자를 구분할 줄 앎으로써, 위만과 한사군의 일제 식민사학의 옷을 벗어 던짐으로써, 이제 국사개정과 함께 중국과 일본으로부터는 완전에 가까운 해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압제자가 나서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양독이다. 우리 역사와 국조 단군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는 민족의 병균이다. 전장의 적군이다. 이 땅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먼저 한사상으로 교화하라. 그래도 안되면 찌꺼기는 버리는 법이다. 얼기미(얽음이: 채보다 선근 채의 일종)로 쳐서 걸리는 찌꺼기는 가차없이 버려라. 풍화작용으로 가루가 될 때까지 길바닥에 내버려 두라. 다음에는 채로 쳐라. 병균은 초장(初場)에 박멸해야 하고, 전장에서 적군은 박살내야 한다. 우리의 광복군은 그 춥고 거친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일본 제국군을 무참히 무찔렀다.

한국 청년들이여! 단군의 후손들이여!
그대는 오늘의 광복군이 되라! 현대의 동학군이 되라!
오라, 청년들이여! 한사상으로 무장하여 광복역군 조직한다.
대종(大倧)의 삼신·한얼을 바탕으로 하고,
증산의 원시반본, 해원상생을 위하여
소태산(小太山)의 행동철학으로 실천에 옮긴다.

 “이 백성이 잘 살고 제 조상 모시고 제 노릇하는 것은 생존권의 주장이 아니고 진리의 주장이다. 한민족이 못사는 것은 온 우주의 아픔이다. 하느님의 슬픔이다. 우리의 심장이 이 진리로 무장되는 날, 우리는 새 시대의 용사다. 두고 보자. 우리는 기어코 해내리라. 선택된 민족은 유태인이 아니라 Original Israel민족, 곧 동방의 Chosen People, 조선민족이 될 것이다. 그 땅은 Chosen Place, 조선 땅이 될 것이다. 우리는 큼직한 재기(再起)를 위하여 천년 동안 인류 구원의 정도령(正道令)사상을 품은 채 은둔하면서 한 구석[狗席:개자리, 가장 낮고 으슥한 곳]에서 간심(艮心, 艮은 결실을 의미)의 한(恨)을 품고 살아왔다. 이제 말도 하나요, 민족도 하나요, 풍속도 하나니, 땅도 하나가 될 때까지 한을 품자. 그리고 이 한을 더하게 하는지 어디 두고 보자. ‘한’사상으로 한(恨)을 풀 날이 올 것이다.”

        이제 해원상생(解寃相生)할까 하노라.

    ■ 요왕에 버림받은 아들 단주의 한
    ■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신하의 한
    ■ 남자에게 학대받다 죽은 여자의 한
    ■ 약소민족이 강대국가에게 설움받은 한
    ■ 한문에 천시당한 언문의 한
    ■ 소중화의 한

모두가 대천제(大天帝)의 분신이거늘, 어찌 나만이 옳다, 너는 그르다는 식의 싸움들을 행하는고(무차별 폭격을 해오니 곤란합니다!). 만상이 짝이 있으며, 짝이 있으므로 통일이 있음을 왜 모르는고(알아 들으시오!). 해원성사(解寃成事)하시는 구세주 미륵불의 말씀을 듣고 무덤을 나오라(나오시오!). 무덤이 있어 그 짝인 생명의 부활이 있는 것이어늘(부활하시오! 한 민족으로!).

우리 땅은 간방(艮方) 지십성토(地十成土) 뜨인돌입니다. 태양은 동방(東方)으로부터 떠오를 것입니다.

 ■ 86게임은 돈을 낭비해서 좋은 성적을 땄다면, 일본은 돈을 낭비해도 왜 못하는가. 민족의 기세가 욱천(旭天)기세다.

 ■ 교회의 윤리적 영향이란 타락일로였고, 교회의 조직력은 자기 체제를 기르는데 힘을 다 소모했으며, 국가에 대한 영향력은 대중을 위함보다는 자기 자체의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되었으며 한 마디로 말해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란 자기 비대증의 역사였다《Rauschenbusch의 그리스도교와 사회적 위기》.

 가.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특권 없는 약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 때에는 그 제왕들과 손을 잡았고 중세 봉건시대에는 봉건영주들과 합세를 했으며, 자본주의 시대가 되니까 자본가와 손을 잡았고, 만일 내일 모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시대가 온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을 준비라도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바른 소리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할 따름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파문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보이코트라는 수법이 있습니다. (게오르규 神父의 〈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에서).  
기독교는 기회주의, 권력유착등 생명유지, 교세확장에 이골이 난 변신의 능수다. 예수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과적으로 바울의 기독교에 이용당하고 있다. The Christianity uses the advantage of Jesus Christ.

 나.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있는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왕을 국가적 상징으로 옹립하고 앵글로색슨 민족 중심의 민족국가를 구성하여 민족의 번영과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고 기독교는 식민지 정책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독일도 기독교인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게르만 민족중심이지 기독교사상 중심의 국가운영이 아니며, 미국도 국기와 國歌와 위인이 國家의 상징이다. 일본은 기도교 역사가 우리 보다 깊은 500년이지만 교인수는 전체국민의 1%(어떤 통계는 5%) 미만인 일본 신도 단일 사회이다. 하나님이나 예수가 일본 천황보다 더 위엄 있는 존재일 수 없다. 러시아도 러시아 정교회가 있지만 러시아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이 땅의 기독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고싶다. (週間宗敎 1986.9.3 수요일 基督敎 同心會長 林一 牧師외 理事一同의 〈단군은 실존 국조이시다-단군성전 건립에 대하여〉).

 ■ 우리의 祭祀 관습에는 祭床음식 정돈하는 방법이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3대 實果인 감, 밤, 대추는 빠트리지 않는다(현대의 젊은 며느리는 3대 실과라면 오렌지, 파인애플, 바나나라고 한다지만). 이것은 바로 나를 낳아 길러주신 조상의 陰德과 뜻을 기리기 위함이다. 고염나무에 감나무 接을 해야만 감이 열리는 새 나무가 되는 것같이 부모는 자식이 사람이 되도록 애써 접목작업을 하였으며, 땅에 심으면 자신은 스스로 썩어서 자양분의 거름이 되어 새 떡잎을 나게 하는 밤알과 같이 부모님은 '나'라는 떡잎을 나게 하기 위하여 젊음을 불태우면서 내가 자라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신 것이다. 곧 나는 부모님의 젊음을 갉아먹으면서 내가 자란 것이다. 또한 대추나무는 흔들릴수록 주렁주렁 대추가 열린다고 한다. 대추나무가 자수분(自受粉)나무(암수꽃 한나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애꿎은 아이들이 나무둥치를 흔들고 태풍에 흔들릴수록 주렁주렁 열리는 대추나무처럼 모진 세파에 부딪히고 역경에 처하더라도 좌절하거나 부러지지 말고 더욱 강해지고 충실해지라는 뜻이라 한다.   이상과 같은 조상의 거룩한 뜻을 추모하며 되새기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제사의 중요한 목적이다. 추억만 하는 것이 제사가 아니다. 진수성찬 없이 찬물 한 그릇 떠놓더라도 3대 실과를 정성스레 놓고 지내면 그것으로도 합당한 제사가 된다고 한다(정다운의 강의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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