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사 '한'사상

삼시랑과 곰과 웅녀

저는 광복 7년 전인 1938년, 낙동강 지류의 하나인 황강(黃江)이 굽이치는 어느 산골짜기 지독한 촌동네에서 출생했습니다. 아마 제가 대 여섯 살 정도로 어렸을 때입니다. 일본 순사가 시커먼 순사옷을 입고 칼을 차고 칭길을 오곤 했었는데(그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동네 집집마다 위생검사, 즉 청결 청소상태 검사를 온 것 같다(?) 그때 동네 어른들은 ‘칭길’왔다고 그랬었다), 저는 그때마다 무서워서 숨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은 걸핏하면 “북간도 간다”, “서간도(西間道)간다” 하고 떠들어댔으며, 실제로 만주로 살기 위하여 떠났다가 돌아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또 젊은 아저씨들은 ‘헤이다이상(군대)간다’고 벌겋게 물들인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르고 동네 사람들이 전송해 주는 가운데 동네 앞(洞口)을 떠나던 장면도 기억이 생생하며, 그러던 어느날 동네 입구 정자나무 밑에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높직한 제상(祭床)을 마련해 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광복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 마음에는 광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어른들이 좋아하시니 덩달아 좋아하던 기억들이 어슴프레 납니다. 그러한 시절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들도 가끔 부부싸움을 하듯, 그때 저의 부모님들도 가끔 언쟁을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삼시랑〔三侍郞:삼신(三神)을 시종하는 수호신〕이 있어서 낳았지, 낳고 싶어서 낳았나”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두고 하시던 말씀인지, 어쩌면 저를 두고 하셨던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이 많았으니 재(災)를 저지르고 성가셨느지도 모르지요. 하옇든 삼시랑 할망구(三神娘:할머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며, 삼시랑 밥, 삼시랑 국이니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설인지 추석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명절이면 짚꾸러미 3개에 쌀밥과 반찬을 떠 얹어서 골목이나 개울가에 갖다 놓던 일이며, 아버지께서는 가끔 무슨 날이면 삽짝(삽알짝, 살앞문, 사립문)에다 누런 황토(검흙, 검토라 하였음)를 떠 와서 몇 무더기씩 출입구 양쪽에 놓고 악귀와 부정을 막는다고 하시던 일이며, 제 동생을 낳고 7일간 검구줄(검줄을 말함)을 매달곤 하시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또 동네 어른들이 서낭당에 가서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치고 울긋불긋한 헝겁 조각들을 매달고 제사 올리던 일이며,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던 일, 한들 한골로 어른들이나 친구 아이들 따라다니던 일 등, 우리 웃어른들이 하시던 온갖 풍속들도 기억납니다. 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가르치시던 천자문(千字文)을 떼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이라는 책을 배우던 중에 광복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거기에서 단군 한배검 이야기를 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제는 이러한 풍습들이 더러 남아 있기도 하지만, 옛날과 같이 재현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도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1년에 한 두 번씩은 꼭 고향을 찾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옛것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옛날의 고향은 오히려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의 휴식처가 됩니다. 도시에서 사는 바쁜 현대인의 생활감각으로 보면 참 하찮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 속에는 은연중 우리의 선조와 고향에 대한 귀소본능(歸巢本能), 우리의 삼신신앙(三神信仰)에 대한 경외심(敬畏心) 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좀 비약적인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옛 어른들의 그 신앙심(무속의 이면에는 깊은 신앙심이 있었으며 단순히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과 우리 후손들의 회귀심(回歸心)은 ‘한’사상의 일 단면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내 개인의 고향은 합천 산골짝이지만, 내 선조·내 민족의 고향은 만주요, 바이칼 호수이며, 알타이·천산·파미르 일대 황무지와 초원과 삼림이 펼쳐진 대륙인 것입니다. 내 마음의 고향은 어머니·아버지가 쉬고 계시는 그 품속이지만, 민족의 심향(心鄕)은 한임(桓因)·한웅(桓雄)·한감(桓儉)이 계시는 삼신 한얼님인 것입니다.

■ ‘桓’字는 밝음을 의미하는 ‘환하다’의 音表記로서 글자대로 ‘환’으로 발음되나 ‘한’도 明의 뜻을 포함하고 있고 또 桓이 ‘한’의 轉音이기도 하며 ‘한’이 우리 민족과 국가의 대명사일 뿐 아니라 바이칼 호수를 중심한 전 대륙에 汗과 같이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한’으로 발음토록 함. 天一桓(自天光明), 地一壇(自地光明) 人一韓이라하여 桓은 ‘환’으로 발음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에도 一理가 있으나 ‘한’얼·’한’울 하늘 天과 같이 민족 고유의 종교정신과 大, 一, 多, 正등 ‘한’의 정신을 감안하여 평범하고도 친숙한 발음으로 표기코자 함. 옛 조상들이 사용할 때에는 ‘환’이나 ‘한’이 구별이 없는 한 音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후대에 구분이 된 것으로 봄. 지금도 어떤 사람은 ‘환하다’를 ‘한하다’로 발음함. 또한 桓因, 또는 桓仁은 한님의 音表記로 봄이 타당하며, 따라서 ‘한님’ 또는 ‘한임’으로 쓰기로 함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위하고 가르치듯, 우리 한얼님과 단군 한배검은 재세이화(在世理化:The rationalisation of the world and human society?), 홍익인간(弘益人間:The maximum service for the benefit of humanity)의 지고(至高)한 이념을 베풀기 위하여 한울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이라는 철학과 삼일신고(三一神誥)라는 신학, 그리고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는 윤리학 외(外)에 여러 말씀과 행동으로 우리 한민족을 가르치고 다스려 왔습니다.

그 이념의 선맥(仙脈)은 천신교(天神敎:神敎, 古神道)·배달도·풍월도(風月道:풍류도. 이상 신시 배달국 시대와 고조선 시대)·국선도(國仙道:고구려)·화랑도(花郞道:신라)·문무도(文武道:백제)·동학(東學)을 거쳐 오늘의 여러 자생 순수 민족종교(대종교·천도교· 甑山道 등) 등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주체적 민족철학이며, 민족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사상적으로는 ‘한’사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한’철학·‘한’사상의 주인공은 ‘한’민족이며, 한민족의 원조는 동이-예맥,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오랑캐로 알았던 여진(滿洲族), 흉노 등의 북몽골인(퉁구스인)입니다. 이들을 최초로 다스리던 우리의 조상은 한님·한웅·한검(단군 한배검) 세 분이었으며, ‘한’철학사상은 바로 이분들로부터 구전(口傳)된 것입니다.

■ 우리가 통상 ‘三神’이라 하면 祖上神과 國祖, 創造主를 연상하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다. 위의 세분이 바로 조상이요, 국조요, 창조주이시다. 조상숭배는 종국에는 三神숭배가 되며, 三神숭배는 조상숭배인 것이다.

가끔 우리는 국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곰의 자손은 곰의 나라로 가라. 숲속으로 들어가라’는 등 면박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만, ‘곰’이라는 말은 ‘검’에서 나온 것인데, 앞의 검줄·검토에서 보았듯이 ‘검’은 바로 신(神)입니다. ‘검’이 일본말의 ‘가미’가 됩니다만, ‘가미’라는 말은 ‘가미가제 도고다이(神風特攻隊)’에서 보듯 신(神)입니다. ‘검’은 이두로 ‘검(곰)웅,’ ‘웅녀(熊女)’, 곧 ‘곰’ 짐승이 됩니다만, 역시 곰이라는 짐승은 호랑이와 함께 옛 부족들의 믿음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 옛 부족국가의 部族名(熊族, 虎族 등)과 官名(牛加, 熊加, 狗加, 馬加, 虎加) 等에서 보듯 동물 이름을 많이 썼고, 믿음의 대상도 동물이 많았음. 까맣다 : 黑·검다, 감다 : 玄·감감하다·멀다 등은 ‘곰 많다’ 熊多에서 나왔다 함, 시베리아를 비롯한 대륙에는 멀리 보이는 숲 속의 색깔이 까만색이었거나 검은 곰이 무리지어 돌아다녔을 것임.

땅위에 사는 지신(地神)으로 의신화(擬神化)된 곰 겨레의 여인과 하느님(神)의 의인화(擬人化)인 한웅(桓雄)의 결합으로 우리 국조 단군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 신화가 또한 우리 ‘한’사상의 신인합일(神人合一) 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혈통적으로 천손민족(天孫民族)인 것이며, 그 사상 또한 천손의 사상인 것입니다. 단군왕검(檀君王檢)은 밝 겨레〔檀族〕이자 곰(=검)겨레〔熊族=儉族=神族=天孫族〕인 천손족의 군장(君長)이었으며, 곰(=검)겨레의 왕곰(왕검)으로서 큰 검(儉)·큰 신(神)인 ‘한검’인 것입니다.〔단군은 제사장(祭司長)의 뜻으로 단군(壇君)으로 적기도 함〕.

우리는 신화와 전설(傳說)을 올바르게 풀이할 줄 아는 사안(史眼)을 가져야 합니다. 신화의 생성(生成)이유를 알고 신화를 풀이할 줄 아는 열려진 마음의 폭넓은 사관(史觀)이 필요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역사는 신화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신화와 전설이 대부분 사실로 고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의 자손은 곰의 나라로 가라’는, 제 조상을 욕되게 하는 무식한 면박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유식하다는 식자층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천박한 식민사관의 맹점(盲點)에서 벗어나서 자기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주체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인에게는 이와 같이 전래되는 삼신사상, 곧 고유의 한사상과 단군 한배검의 천손사상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한사상을 낳을 수 있었던 웅대하고 성스러운 산과 강과 호수와 벌판과 삼림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대륙의 대한국사(大韓國史:桓國史)가 신화 아닌 진실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까지 ‘반만년 역사대국’ 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은연중에 그 역사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었으며, 학교에서 반만년 역사라고 배워도 미지근하고 허탈한 역사 감정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 역사의 진실을 모르고 정열 없는 역사 강의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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