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주의 민족사관

학맥의 분류
앞글 (민족사학 비판에 대한 역비판)에서 민족주의사학과 민족사학이라는 용어는 각각 상이한 시대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의라는 어의(語意)에 자칫 불미스런 의도적 개념이 개입되기 위우므로 엄격히 구분되어 사용되어져야 하고, 통시적 개념으로는 민족사학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왜 한주의라고 하여 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아전인수격 편리한 대로 쓰는 것이 아닌가 힐난할지 모르나 단재의 민족주의사학이나 한주의적 민족사학이 시대적 배경에 따른 진행형태나 단기적 목표는 서로 다를지라도 궁극적 목적은 한주의(Hanism, as Korean mind) 즉 홍익주의라는 데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인식하면 식민사학자들이 쓰는 민족주의의 주의와 한주의의 주의는 고식적·의도적(姑熄的·意圖的)대 순리적(順理的)으로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오래전 선거에서 한주의 통일한국당·일체민주당 등 정치적 공당으로서 우리사회에 표면화 될 만큼 일반화된 한주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주의 민족사관으로 나가야 하고 이미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판단해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역사학자나 역사이론가가 아닐지라도, 역사철학하면 좀 고매한 학문같이 들리고 역사궁리학(歷史窮理學)에 대해서 조금 관심을 갖게되면 역사가 진행해 가는 방향감각은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의식에 따라서 우리들의 희망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객관성 있는 판단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앞서 사학자들이 살펴본 민족주의사관과 한주의 민족사관의 진보방향을 도식으로 표시해보자.

한주의 민족사관을 논하자니 자연히 사관의 분류와 학맥을 잠시 살피지 않을 수 없는데 현 역사학자들이 분류한 다음 도식에서 보는바와 같이 여러 학맥으로 나누게 된 것이다.

※ 민중 다음에(주의)라는 불필요한 말은 필자가 부기한 것임. 이와 같이 주의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와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여 사용해야 할 것임.

이기백교수는 일제시대사학을 위와 같이 구분하고 정인보, 홍의섭의 후계자인 연세대의 김영섭 교수(관방사학 즉 식민사학 비판자)를 사회경제주의사학 쪽으로 넣음으로써 좌경학파 비슷하게 보았고 동국대의 이기동교수는 30회 전국 역사학대회에서 ‘현재 한국사학계는 우파 민족주의사학과 좌파 민중사학의 부당한 공격으로 인해 존립의 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한국 고대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고 주장하고는 고대사에 대한 최근의 관심 고조 현상이 70년대 유신체제의 정치적·사상적 풍토에서 생성·대두된 극단적 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진단하고 ‘실증주의 역사학은 일부 인사들의 말처럼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잔해는 분명 아니며 그 자체 매우 견실한 역사연구 방법론이요, 엄격한 학풍’이라고 반론하면서 엄격한 실증 위에서 사학이 성립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이 분류한 대로 오늘날 민족사학을 편의상 우파로 민중사학을 좌파로 인식하고 있으나 역사가 진보해 가는 방향은 우파 좌파가 문제가 아니라 여러 흐름으로 분류되었다가는 다시 한곳에 모여 새로운 하나의 큰 물줄기로 본류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는 1887년 동경제국대학 사학과 창설 당시에 일본인으로서는 사학을 전공한 적임자가 없었으므로 초대 사학과 주임으로 초청된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랑케의 제자였던 20대의 루드비히 리이스(Ludwiq Riess)의 학맥중에 한사람인 이병도씨가 서울대 사학과를 30년간 무단통치하면서 거기서 배출된 후학들이 한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여 아성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동경제대 국사학과의 맥을 유지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틀이 문제이며 그 여파로 오늘의 국사편찬위원회도 한국사 왜곡의 본산이랄 수 있는 동경제대의 학풍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사 편찬취지문」을 써서 3·1 독립선언서처럼 조선역사 왜곡을 선언한 일제의 흑판승미(黑板勝美)의 후계자 평천징(平泉澄)이 조직한 주광회〈朱光會(히노마루라는 붉은 일장기(日章旗)를 뜻함)〉의 회원 86명중 살아남은 자들이 현재 일본 문교부 역사교과서 심의관으로 검열하고 있는 그자들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주도함으로써 금일 일본의 「신국가주의」의 선봉이 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문교부 역사편수관으로 있는 00씨를 비롯한 역사학계의 요직도 그 학풍의 영향을 받은 그 학맥 그 아성의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주류가 새로운 본류로 바뀌어 역사가 시정되자면 오늘의 역사가들 중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물러나고 그들의 제자, 또 그 밑의 제자들까지 … 이렇게 따지면 10년 20년에 해결될」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일본 지나와의 대외적인 역사전쟁보다도 우리 안에서 하는 역사전쟁이 더 어렵다. 한국인의 싸움은 대를 물려가면서 하는 싸움이라서…
누가 내 논문을 반박해 이미 그 논문을 모아서 단행본까지 냈는데, 내가 아버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내 논문 못 고쳐… 학계에는 주류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벗어 나면 조교고 뭐고 없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벗겨지도록 강사만 하다가 겨우 시골 학교의 교수자리 하나 얻을똥 말똥… 어느 나라든 아성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에서도 랑케사학의 아성을 약간이라도 벗어 나면…, 거기에 도전하려면 상당한 재력이나 그 무엇을 가지고 덤벼야 한다.…(000교수의 강의내용 중 참조)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독일의 젊은 시인 F.Schiller(1759 ∼1805)가 1789년 5월 예나 대학에서 행한 그의 최초의 역사강의 『세계사란 무엇이며 무슨 목적으로 연구하느냐』의 내용 중에 「밥벌이 학자(Brotgeherte)」에 대한 부분이다.

「밥벌이 학자」와 「철학적 두뇌」와는 준엄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고서 밥벌이 학문만을 일삼는 낡은 교수들에 대해서 일시(一矢)를 쏜 것이 더욱 학생들을 열광케 하였다.… 물질적 욕망을 충족하고 조그만한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서 정신력을 소모하는 대신 정신을 정신자체로서 향락하려는 생각은 아예 거부하는 사람들이고…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긁어 모아놓은 기억과 지식을 전시하는 일이고 또 그 지식과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다. 따라서 자기분야의 학문이 확대 발전되어 나가는 것은 그에게는 불안거리다. 그것은 새로운 연구를 요구하거나 과거의 지식을 무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행운한 천재가 불붙이는 등불은 학문의 어떠한 분야에서는 「밥벌이 학문」의 빈약성을 들춰내고야 만다.
… 「밥벌이 학자」는 보수를 사상세계 자체 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인정, 명예 있는 지위로서 보답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얻기에 실패하는 날에는 세상에서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게 되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이라는 가장 고귀한 수단을 가지고서 품팔이 노동자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고 가장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학문세계에서 노예근성을 끌고 다니는 사람처럼 딱한 사람은 없다.〈고병익(高柄翊)의 『아시아의 역사상』에서〉

학맥의 분류를 살피다가 잠시 옆길로 빠졌는데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지금 이 땅에서 재연되고 있는 느낌이다. 고려대 신일철(申一澈)교수의 『신채호 역사사상 연구』에서 거론된 「진보의 개념이 없는 역사 니힐리즘」이 진보를 향하여 투쟁하는 역설적 국면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한쪽은 사실과 인간정신, 철학의 역사학이요 다른 쪽은 실증과 고고학으로 분장(粉粧)한 역사학이 마주하고 있으나 통일이라는 명제와 인류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대의(大義)가 좌파와 우파, 아와 비아를 한 도가니 속에 넣어 융해시킬 수 있는 계기가 오도록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이다.

실증주의 사학을 강조할 때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은 역사에 있어서 인간정신의 존재이다. 역사는 인간이 주체로서 개입되었을 때만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며 단순한 자연변화는 역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역사에서 정신과 철학이 도외시 되면 역사는 그저 객관적 사실을 증명하는 과학일 뿐이며 가치중립 적인 것이 될 뿐, 인간이 주체가 되었을 때에 나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우리의 역사성과 주체성을 반문할 수 있고 여기서 전통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전통사상은 보통 보수적이고 반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요인을 지닌 과거의 진정한 전통은 계승가치를 지니고 살찌게 하여 긍정적으로 살려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이다. 전통을 정당하게 이해할 때에 사회적 공동참여의 연대의식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성의 함양과 집단정신의 고양에 기여할 수 있게 되면 보다 발랄한 창의성을 낳게 된다. 전통에 대한 반성이야말로 인간의 생명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통을 잃어버리고 그때 그때의 풍조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살아 갈 때에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자기를 적극적으로 긍정할 때만이 자기의 역사와 민족에 기여하게 되고 나아가 인류사회에 공헌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정할 때에는 괴뢰일 뿐이며 허수아비일 뿐이다.
19세기는 제도개혁의 시대, 20세기는 산업경쟁의 시대,21세기는 인간화의 시대. 이에 부응하는 인간존중의 철학과 사상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철학은 인간존중의 사상이다. 환웅의 탐구인세(貪求人世 : 인간의 세상을 형성하고 싶다.) 원화인간(願化人間 :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이라는 것은 인간긍정의 찬란한 사상이다. 나의 깊은 내면은 너의 깊은 내면과 하나다. 너와 내가 양심 깊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인간존중의 사상이 바로 한국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이에 어떠한 종교나 사상이 들어와도 다른 곳에서처럼 반발이나 대립없이 융화되고 동화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퇴계의 성리학에서의 이기호발론(理氣互發論)처럼 한때 이원론(二元論)도 있었으나 율곡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거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란 통일의 철학이 되었으며, 서양의 철학이 변증법적 투쟁론, 칼막스의 유물론이나 계급투쟁론 뿐이었는데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족의 중심사상이 들어 있는 참역사의 기원을 밝히고 한국역사를 바로 일으켜 세워 우리 민족과 세계사에 기여할 때라 생각한다. (류승국 저 「한국사상의 양상과 본질」)

한주의의 이념
어쩌면 황당무계한 꿈일 수도 있으나 일찌감치 헛된 꿈에서 깨어나 오늘이나 정신차리고 살라는 충고의 소리를 귓전에 들으면서, 그러나 문명사의 흐름을 지켜보는 세계의 지성이 기대 어린 눈매로 우리를 격려하는 현실에 무심할 수만은 없다.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동쪽이었고 커다란 문명의 파도가 칠 때마다 그 진원지가 서쪽으로 옮아갔다가, 서세동점의 근대화가 20세기와 함께 마무리짓는 단계에 이르러 새 문명의 불줄기가 동아시아에서 피어오르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관찰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깊이 성찰해 볼일이다.
근자에 이르러 몇 가지 조짐으로 미루어 유럽과 북미주를 중심으로 꽃피어난 근대화문명은 막바지에 이르러,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세대를 겨냥하여 지금 세차게 일고있는 새 문명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휩쓸려 갈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공업화가 자아낸 산업사회화의 소산물은 이제 노쇠하고 경직화하기 시작했으며 사회전체가 어쩐지 무기력해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은… 생동감이 넘쳐흐르고 힘이 용솟음쳐 오르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이와 같은 대조에 바탕을 두고 문명 진원지의 이동설을 운위하는 셈이다.
그러면 정작 동아시아에 자리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같은 예측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는가? 가끔 이런 논의가 나올 때마다 흔히 느끼게 되는 바는 그러한 예보가 마치 우리나라만을 겨냥한 것 인양 착각을 하거나 우리에게 이미 그와같은 구실이 주어졌다는 우쭐함으로 자칫 오만해지는 국수주의적 자기민족중심주의가 활개치지나 않나 하는 의구심이다….
앞날에 펼쳐지리라 예상하고 또 그렇게 전개되어야 인류가 살아남을 뿐더러 한 걸음 성큼 앞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이란, 기술과 경제의 바탕 위에 서되 그것들의 한계를 뛰어 넘어 정신과 예술의 차원에서 한층 더 꽃피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업을 앞장서 수행하는 사회는 무엇보다도 유연성을 그 근본원리로 갖출 필요가 있다.
공업화문명의 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 경직성이므로 이를 극복해야하는 새로운 문명은 유연성을 핵으로 삼아야 한다. 경직성은 사회조직의 획일화,표준화,극대화,동시화,집중화,집권화,원자화등을 내포하고 의식의 1차원성과 욕구의 단세포화를 담고 있다.
이에 비하여 유연성은 자율화, 다양화, 소집단화, 분권화 등의 조직원리와 의식의 다차원성 및 욕구의 다원화를 촉진한다.
창의력은 유연함에서 조장되고, 적응력은 신축성에서 높아진다. 그러한 자질을 장려해야만 차원 높은 새 문명의 창조가 가능하다. 그리고 21세기에 새로운 문명에는 반드시 그 동안 득세한 서양의 요소에 가려져 있던 동양의 전통속에 담긴 풍부한 지적, 문화적 자원을 십분 활용하는 게 요긴하다.
물론 서양의 합리성을 동양적으로 승화하여 그 장점을 철저히 살릴 수 있어야 하려니와 그 위에 동양의 유연함, 은근함, 따사로움의 요소들이 살아 나오도록 새로이 꾸밀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식을 유연화 시키면서 기울어진 문화를 바로잡고… 우리민족이 끈질기게 간직해온 문화역량을 한껏 발휘하는 세기가 되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의식과 사회구조의 유연성을 키우는 일에 힘써야겠다.〈김경동(金璟東)교수의 「21세기 예언적 조망에 붙여」〉

한주의의「재세이화(在世理化)·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이념이야말로 합리성과 유연성을 가장 적절하고도 포괄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표현이다. 이 이념에 투철할 때 감정적 우월감이나 오만한 태도를 허용할 여지가 없으며 그 대신 고도의 창의력과 적응력을 진작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터전인 한밝문화의 전통속에 세계문명의 발아적 요소로서 동양의 풍부한 지적·문화적 자원이 담겨져 있음이 최근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로 밝혀지고 있다.

오늘의 세상형편을 천하무도(天下無道), 천하계병(天下階病), 천하대난(天下大亂)이라 표현함에 무리가 없다. 도가 없으므로 세상이 모두 병들어 어지럽다. 도는 곧 진리다. 그것을 자연의 섭리라 말하고 혹은 신이라 불이라 천이라 한다. … 중략 …
현대의 분석과학이 낳은 물질문명은 자연을 파괴함으로 온갖 공해를 일으키고 생명마저 멸망케하는 위기를 만들었다. 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질병, 자살, 범죄는 늘어갈 수밖에 없다. 기술은 있어도 도가 없다. 도는 자연이다. 부자연은 부도덕과 같다.… 과연 오늘의 문명이 진보냐? 퇴보냐? … 해답을 모색하고 제시한 것이…「성도문명(聖道文明)의 건설」이 그것이다.
자연으로 회귀! 대도로의 복귀! … 〈한주형(韓宙馨)著 「천지인진리경」(天地人眞理經)서문에서〉

도는 곧 길이요 진리다. 그런데 종교도 의도(醫道)도 정도(正道)로 가지 않고 인(仁)이 없는 물질화, 산업화로 치닫고 있다. 원리가 없는 분석 위주의 물질문명은 편리와 사치를 주는 대신 위 인용문과 같이 공해와 신경성 질병등 원인불명의 질병과 흉악범죄를 가중시키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철학이 없는 과학지식만의 주입은 물질만능의 기계인간으로 타락시켜 무도천지로 만들었다. 기술은 있어도 도덕교훈이 없다. 사회적 방향감각 상실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신질환을 유발케하여 거리의 부랑아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강증산의 처방은 칠흑중에 광명이 아닐 수 없다

대병(大病)에는 약도 없고 도가 있으면 약 없이 저절로 났는다(증산 강일순).

민족사관으로 접근
이때까지의 설명으로 한주의 민족사관이 부상하게 되는 당위성이 윤곽 지워질 것이다.
위에서 일관되게 거론된 내용을 부연하는 것이 되겠는데 일부러 한주의라는 신념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한민족사의 사상적 본질이 원래 합일철학, 삼일(三一)철학으로서 시대에 따라서 불교, 유교, 성리학, 실학, 기독교 등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지만 근원이 되는 정신과 철학은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도덕과 과학을 전일하는 이념상의 「한(하나)」사상이요, 주인공 환인(桓人), 환웅(桓雄),환검(桓儉) 3신이 한얼이라는 역사주체상의 「한」사상이며, 높다 크다 밝다는 한밝의 「한(桓)」사상이 근저에 깔려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왜 한주의 민족사관이어야 하는가 하는 주제를 상정함에 있어 ‘특정신념에 도달하려는 민족주의 사학의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 민족주의 사가의 학문적 과제’라는 경계철조망은 어느 정도 청소가 되었으리라 믿으며 주제 선택의 대의에는 수긍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 사관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참역사의 기원을 밝히고 한국역사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작업과정에는 지뢰밭을 통과하는 위험처럼 비합리적 비과학적 인위적 무리를 범할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통로 개척작업에서 사고를 일으킬 때 역사를 정치나 이념의 시녀화 도구화 하려한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나 이것은 누구나 유념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와 같이 사상변천과 그 기원을 탐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역사가 문제가 되는데 사상사로서의 역사문제를 따지는데 근본사료가 중요하나 문헌 연구에는 사관, 철학의 입장, 관점이 중요하다. 역사는 논리의 문제라기보다 관점의 문제다.(류승국 교수「한국사상의 양상과 본질」요약발췌)

이러한 역사의 정신과 철학과 누가 주인인가 하는 인물중심의 관점(일본, 지나, 몽고의 유명인들은 대부분 한국계)이 도외시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무정신 무정난(無精神 無精卵)의 역사가 될 것이요 그 역사란 단순한 자연과학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헌고증만으로는 사료빈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게 될 것인바(사실 한국사에 대한 자료는 부족한 것 같으나 반대로 방대한 자료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음) 신화나 민속이나 토속신앙을 무시하면 죽은 역사가 될 것이고 이러한 자료를 활용하는데 있어서도 일제가 왜곡해 놓은 민속자료 답습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냉철하고 과학적인 역사를 추구하는 처지에서는 도가사관(道家史觀) 즉 선가사관(仙家史觀)을 감상적인 것으로 도외시하기 쉬울 것이나 그래도 사가들의 맹목을 밝히는 구실을 어느 정도까지는 감당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정신문화연구원 발행 「한국학 기초 자료선집」741쪽 서울대 차주환(車柱環)교수〉

차교수는 인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미심장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상에서 한주의 민족사관으로의 접근 당위성에 대해서 암시가 될 것이다.

얼마전 모 월간 잡지에 단군주의(Tankunism)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데 박성수 교수가 그렇게 이름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떻든 외국기자의 사고방식이 인상에 남는다. 한국민족운동을 단군주의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직 외국인에게는 이해가 잘 될지 모르지만 역시 한주의 홍익주의라 하는 것이 보편성 있는 명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가지는 한주의의 부상경위나 역사접근방법, 명칭에 대해서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한주의가 무었이길래 그러는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외교 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는 한주의통일한국당 일체민주당등에서 한주의 정책을 밝힌 바 있을 뿐 아니라 필자는 아직 그 방면에는 식견이 모자라나 역사궁리적 방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앞에서 몇 번 언급되었지만 사람의 역사는 주인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정신 즉 철학이 있는데, 한민족사의 주인공과 그 정신인 철학에서 삼일(三一)철학이라는 합일철학이 나오게 된다. 한알님 - 한얼님 - 한울님, 한인 - 한웅 - 한검, 민족 - 국가 - 문화 등과 같은 신앙과 역사의 3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서 배달의 역사철학이 나온다.

                                

(갑) (을)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갑) (을)이 제3의 (병)으로 합일한다.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뒤가 없는
삼자 동시성으로 연속적 순환과정이다. 여기서 삼태극(三太極) 한 사상이 나온다. 또한 한은 천환·지환·인한 (天桓·地桓·人韓)의 한(桓)과 같이 높고 크고 밝음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한의 문화인 한밝문화가 나오게 된다. 한밝은 환문(桓文)으로 광명(光明)을 뜻하는데 밝게 비치는 물질적 입자이며 파동인 광(光) 즉 빛이라는 에너지(Energy)와 보이지는 않지만 잔잔한 심적(心的) 밝음인 명(明)을 포함한다.

한(桓)은 전일이며 광명이니 전일은 삼신의 지능이며 광명은 삼신의 실덕으로 우주만물의 소선(素先)이라〈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한은 곧 하나도 뜻함이 되고 밝음을 뜻함도 되니, 3이(而)1의 하나와, 도덕과 과학이 하나되는 진리의 세계는 3주체의 전지전능함에서 기인되고, 밝음에서 나온 한밝문화는 3주체의 후덕함에서 펼쳐지는 인류사의 시원이다.
지구상에서 한주의 태극사상의 주체는 한민족이며 그 역사는 한민족사이다. 한국은 한민족 단일국가이기 때문에 한민족사는 바로 한국사이다. 이 논리에서 도약하면 역사철학적 한국사관은 세계사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밝문화의 터전에서 계속되어 온 한국사는 한의 실체를 파악하기 전에는 형상만 논하게 되는 알맹이 없는 역사학이 되고 말 것이다. 그만큼 한의 역사에서는 민족+국가+문화의 역사3주체 중에서 한밝문화의 근간이 되는 역사철학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한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선가사관을 중시해야지 경시하다가는 그 역사를 바로 파악할 수가 없다. 물론 역사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분야를 다루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사관적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를 다룰 때 외국의 역사와 달리 유의해야 할 점이라 할 수 있다. 한배달의 역사가 역사철학적 문화적 요소가 강했던 점에 비한다면, 근세사 세계주역으로서 서양은 물질문명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State-Nation, Nation-State 적 요소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류문명의 시원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 문화적 요소로써 세계사의 리듬을 조화하는 길 밖에 없다.
이 문화의 뿌리가 되는 역사철학이 삼일(三一)원리요 한밝사상이다. 이 사상에서 공명(公明)이니 공평(公平)이니 공애(公愛)니 하는 자유, 평화, 평등, 박애의 생활철학이 나오고 종국적인 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표현되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단순한 색의 문명에서 이제는 E=MC² 이라는 광(光)의 세계에 와서 서양문명(태양문명)은 벽에 부딪혀 돌파구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데, 상고시대에 이미 광(光)은 물론 명(明)의 세계에 도달한 한밝문화(태극문화)는 원초부터 서양문명의 한계를 넘어서서 물(物)과 심(心)의 합일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세계주의 사관
고대 우리 민족은 경신, 숭조, 애인, 애물의 기풍으로 독특한 정신문화를 이루어 동방예의지국 또는 도덕군자국의 칭호를 들었던 것이다. 물질을 귀중히 여기되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문명도 뛰어났던 것이다【한주형의 <성의도(聖醫道)>. 故 복초 최인의 <민족의 재발견>에 나오는 「한국인의 重物主義사상」이 있으니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이의 태극문화인 태백문화(한밝문화)의 지류가→황화문화→인도, 메소포타미아, 애굽문화→로마→영국, 미국→일본→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따라서 한주의 민족사관을 주장하는 것은 국수적 민족주의 역사관을 부추기는 것이 될 수 없다. 한주의 「주체민족」사관은 곧바로 세계주의사관으로 접합하여 일맥상통하게 되며 한주의는 강조하면 할수록 인류를 위하여 유익한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자리이타사상(自利利他思想)이다. 자리 한쪽으로만 빠지면 그야말로 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될 것이고 맹목적 이타가 되면 민족도 국가도 필요 없다는 무정부주의와 가식적 세계주의로 흘러 자기존립의 철학적 기반마저 무너지게 되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염산과 나트륨이 합쳐져 안 먹으면 못사는 소금이 되듯이 한주의 홍익주의는 자리이타주의이다.
오늘의 세태는 범세계주의라는 미명하에 절름발이에 불과한 로마국수주의(Pax-Romania) : 영·미국국수주의(Pax-Britanica,Pax-Americana) 또는 독일이나 일본 등 서구나 그 아류의 국수주의가 세계화된 현상인데 금일의 국사학계가 거기에 흠뻑 빠져 오히려 객관성을 잃고 이성을 상실한 채 그들의 소위 첨단시류에 아첨하거나 부화뇌동하는 경박한 학풍의 온상이 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그리하여 민족자존의 비전을 스스로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철부지가 되어 한국국수주의【한주의→Pax Koreana : 국수(國粹)라는 말은 원래 나라의 순수한 전통이나 철학등을 의미하는 좋은 뜻이 있음】가 세계인류주의라는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독일이나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잘 못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시(斜視)하는 것 같다. 우리의 한주의식 국수주의에 비하면 독일이나 일본국수주의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국수주의도 분명히 잘못됐음이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는 서구 기독교사회의 소산이며 공산주의도 그 사생아이다. 모든 사상의 시원처인 한국에서 공산과 자본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으나 또한 그 시원처에서 옛 지도이념을 새롭게 짜 맞춘 유민국신사상(維民國新思想)의 백두유신(白頭維新)이 나오게 됨은 당연한 이치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있을 수 없다. 깊고 든든한 옛 뿌리, 새 열매인 한주의가 바로 백두유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류의 장래를 내다 볼 때, 우리는 투철한 한주의 국수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arp_back.gif  calm_up.gif  board_b_next.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