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續)한주의 민족사관 : 실증사관과 한주의 민족사관의 진로

어느 학문을 막론하고 시대적 소명(召命)에 따라 학문 자체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시운(時運) 이 요구하는 소명과 그 소명에 부응코자하는 사명의식이 서로 일치할 때 그 학문의 시대적 가치가 발휘된다. 아무리 고고한 학문이라 해도 이 이치에 적응하지 못할 때에는 형해화(形骸化)된 학문, 활성화 될 수 없는 각문(刻文)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독자적이면서도 학문으로서 고고한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강조해도 이 원리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자연과학도 시대에 따라 연구방향과 분야가 변화되고 있는데 더구나 인문과학은 관찰자의 관점이 급변하고 있다. 음악·미술·무용등 예능활동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이 유행은 어느 날 저절로 갑자기 도래한 것이 아니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현상화 된 것이다. 학문의 독립성에만 집착하여 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할 때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거나 역행이 되고 말 것이다. 역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어느 서양사가의 말대로 역사가의 임무는 사실을 명확하게 구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은 본래 선택의 학문이다. 있는 사실을 다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무수히 많은 여러 사실들 사이에서 선택해서 인과관계를 파악해 냄으로써 사실의 의의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그런데 지난날의 역사를 투시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전체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의 역사적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관(史觀)인 것이다. 흔히 역사라 하면 년대(年代)나 사건이나 인명 등을 기록하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학문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의 잡다한 사실들을 정확히, 그리고 많이 기록하는 것만이 역사 서술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전적인 오해이다.
그러나 한때는 사실만을 매우 숭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은 “그것이 원래 어떻게 있었느냐?”하는 문제를 일체의 주관을 배제한 채 밝히는 것이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임무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983.10.15. 육군본부발행 〈통일과 웅비를 향한 겨레의 역사〉 P.17 역사를 보는 눈)

그러기에 역사가는 오늘의 민족적 과제 해결과 조국의 원대한 내일의 미래상 정립에 기여할 수 있는 일정한 이론이나 관점에 입각하여 과거의 잡다한 사실들 가운데 의미 있는 것만을 선정·배열·해석해야 하며, 여기에 필요 없는 사실들은 피안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바로 역사의 연구요, 이러한 이론과 관점이 역사관이며 역사의식이며 역사철학인 것이다. 역사란 결코 과거의 잡다한 사실들을 백과사전 식으로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과 아픔을 같이 할 수 없고 민족적 자각을 일깨워 민족의 융성 발전에 기여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의 나열은 너무도 무의미한 민족 부재의 역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당면한 현재적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번영을 이륙하려는 아무런 관점도 이론도 의식도 없이 과거의 사실만을 나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아니라 잡다한 과거 사실의 쓰레기통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관점이나 철학의 나열 또한 진정한 역사가 아니라 뿌리 없는 공허한 철학에 불과하다. 결국 역사에 있어서 역사 구성을 위한 ‘객관적 사실’과 역사 발전을 위한 ‘주관적 추진력(사관)’은 그 어느 하나도 무시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하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향한 관점이나 철학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고 비판하며 서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는 역사, 현실 속에 에너지화 될 수 있는 역사, 위대한 조국의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가 될 것이다. (상동 P.18∼19)
그리고 사관이란 역사를 보는 눈, 혹은 관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보는 눈이 없거나 아니면 관점을 달리할 때는 역사 이해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사관이란 역사의 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사관이란 민족의 발전을 모색하는 추진력과 객관성을 동시에 지닌 건전한 것이어야지, 특정 목적을 위한 악의에 찬 음모에 빠지거나 패배주의의 늪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사관이 없는 역사도 죽은 역사이지만, 사관 자체도 현재의 시대적 요구나 국가목표, 새로운 시대 정신이나 민족의 지상과제(至上課題) 또는 절박한 민중의 요구가 투영된 것이어야 진정 살아 있는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역사관도 그 시대의 민족적 과제를 외면한 채 성립될 수는 없으며, 성립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가치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곧 미래의 출발점이자 보다 나은 내일을 창조하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에 현재의 투철한 시대 정신과 민족적 과제가 투영된 역사관만이 민족의 현재와 미래 속에 힘찬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상동 P.19∼20)

지금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사실’의 선택을 잘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증사관의 ‘사실구명’이라는 표현대로 폭 넓은 문헌이나 언어학, 고고학, 민속학, 성서고고학 등을 토대로 하는 사실구명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범대륙적 거시안적 규명 노력도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음으로 해서 서양 아류의 일제(日帝) 학자들이 정립해 놓은 그대로를 믿고 있거나 서양문명 중심의 역사 기술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한국사의 진취적 사실(史實)에는 애써 부인하려 드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설사 민족사학자로 자처하면서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학자가 있더라도 스스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낡은 학파적 아성의 틀은 벗어나지 못한 채 근본적으로 착상의 전환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가운 실정들이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면 대부분의 서양사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인류의 출생이 아프리카 시원설로 고정된 것은 아니며 근래에는 시베리아를 비롯한 동북아 시원설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고 동북아와 동아반도 일대의 현 인류의 조상은 인류의 시조로서 금일 한민족은 자생민족(自生民族:농경민족)과 이동민족(유목민족)이 연대하여 이루어 놓은 공동체일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백두산과 바이칼 사이의 대문구(大汶口)문화권이 메소포타미아 문화권 보다 앞선 것으로 동북아 시원인간이 후자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이 점차 거론되어 가고 있다.
또한 금일의 세계사는 서양사 위주로 기술되어 있으나 서양이 세계적 주도권을 잡게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로서 중세의 이슬람권과 그 이전의 아시아권 및 아메리카 문명권의 역사를 상세 확대하여 세계사는 재기술 되어야 할 것이다.
문명의 시원은 동방아시아였으며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온 세계를 제압하여 근 현대사의 실권을 잡은 것에 불과하다. 서양사 기술방식 대로라면 만약에 지금이 징기스칸시대라면 인류사는 온통 몽고제국의 역사적 색채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토인비는 〈歷史의 硏究〉라는 그의 문명사관에서 역사를 이해하려면 19세기적 전통사학의 잘못된 전제중 하나인 국가주의적 연구 태도를 버리고 문명의 연구에서 시작해야 세계사 전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 그의 지식한계로서는 세계문명의 제1대 근원문명을 논하면서 극동문명의 머리문명을 처음에는 그냥 중국 고대문명으로, 나중에 상(商)문명으로 다소 구체적으로 설정하였으나 상문명이나 수메르문명, 에집트, 안데스, 미노스. 인더스, 마야문명의 선행 아버지 문명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그의 식견으로서는 환단(桓檀)문명권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북아 대륙과 동아반도에서 배달국시대는 차치 하고서라도 최소한도 고조선, 3한시대의 문명확산 과정은 정확하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중국문명, 인도문명, 수메르-에집트문명, 멀리 잉카-마야문명의 근원이 된 것은 물론 고대 일본 땅은 고조선, 부여, 3한, 3국 유이민의 나라로서 고대 이들 국가의 역적의 도피지 정복지요 심지어는 이성계의 압박으로부터 탈출한 고려 왕족의 피난 정착지로서 열도를 타고 온 남방계와 아이누족등의 원주민은 1할이고 나머지 9할이 대륙도래계라 하는데 일본 땅은 우리 동족의 거주지요 고대 일본은 백제와 신라의 전국시대였다. 또한 현대 일본말은 서울 표준말에 대한 경상도 사투리나 제주도 사투리처럼 한국말의 동경 사투리로 보면 되고 심지어 일본 국기는 고대 가야의 상징인 소위 가야국기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천황가의 구성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따라서 일본인이 믿고있는 일본 신(神)들은 바로 한국 신들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조명시킴으로써 일본 민족을 같은 뿌리로서 서로 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인들로서는 이러한 역사적 열등의식의 역작용으로 근세 개화기 이후의 반작용적 학대심리가 노출되고 있으나 역사를 바로 조명함으로써 한일 양국이 한뿌리 한문화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 공존공영의 영광된 동아사를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반도와 일본제도에서 착착 현상계로 고증되고 있으며 한단사에 대한 실증도 불원 만주와 북중국, 산동, 몽고, 고비사막 등지에서 현실로 나타나리라 믿는다.
근래 세계의 많은 부분이 앵글로색슨의 문화영토인 것처럼 고대세계는 한민족의 문화 영토로서 BC8000년경부터 단군 조선시대(BC221년)까지 아시아 지역의 대부분과 지중해까지가 우리의 문화 영토였다. 이 역사적 사실을 파헤치는데 왜 수많은 재야 및 일부 교단의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이 사재(私財)를 털다시피 하면서 생명을 내걸고 국학에 불을 붙이고 있는가. 이들에게는 생명을 바칠만한 귀중한 그 어떤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관학파 사학자들의 자세처럼 그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시해도 될 것인가. 여기서 다시 어느 서양사가의 말이 생각난다.

진보하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방향감각을 가진 역사가,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역사가가 객관성을 가진 역사가가 되는 것이다. (할레트 카아)

‘실증’하면 연상되는 일제시대의 진단학회(이병도씨가 주동이 되어 1934년 실증사학의 표본인 진단학회를 창립하고 진단학보를 창간하였음)를 비롯하여 그 학맥의 학풍이 사실에 대한 충실한 검증을 하고 역사를 냉철하게 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는 높이 평가할 수 있고 이들이 한국사학의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시대적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은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실증사학자들의 신학문적 방법으로 인하여 헐벗은 상태에서 역사학이라는 근대적 학문의 옷을 줏어 입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되겠으나 한일합방이후 일본인들의 손을 빌려 역사가 편찬됨으로써 우리 조상의 행적이 저들 나름의 안목과 목적에 의하여 굴절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기본적 구도에서 한치의 변함도 없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춘궁기에 황달병에 걸렸던 사람이 핏죽이라도 한 그릇 얻어 마신 연후에라야 생기를 찾아 제 정신이 들듯이, 어쩌다 일본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지어준 학문이라는 너울이라도 덮어쓰고 보니 그제서야 원래의 제 옷을 찾아 입고자 하는 궁리라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실증이라는 낱말은 귀에 익었고 이제는 그 임무를 다하고 소명이 퇴색해 가는 시운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것은 그 사관 추종자들만의 생사여탈적 생존의식과 권위의식, 상아탑이라는 달팽이 껍질 속에 안주하여 발버둥치는 낡아빠진 사명의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시운의 소명이 변천 되가는데 허둥대는 사명은 이미 근거를 잃고 균형을 잃은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만다.

한편 실증은 역사학의 기초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역사학 자체일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실증사가들은 개개의 사실(史實) 위에서 일반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작업에 큰 의욕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역사학은 학문이기를 그만 두고 취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한국사학이 혼미한 원인의 하나가 이러한 유산을 물려받은 데에 있는 것이다. (차하순 편〈사관이란 무엇인가〉P.277 이기백교수의논문)

과거에 실증사학은 이론을 외면함으로 해서 단순한 기술로 전락하였으나 역사에 내재(內在)하는 의미(meaning)와 의의(significance)나 역사과정의 일반성(generality)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이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과정으로서의 실증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연대순에 따른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초자연적, 초월적, 형이상학적, 사변적, 선험적인 면을 살펴 합리적 체계와 질서에 대한 직관적 파악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별적인 역사사실 보다 더 광범한 관련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역사를 하나의 전체로서 보는 개괄적인 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동 P.278 및 그 외 참조)
실증사학은 근대사학으로 발전을 본 문헌 중심의 입장을 고수하는 학풍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역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방법이며, 현재까지 우리 학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이론이나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문헌 중심의 착실한 고증과 사실 추구에서 얻은 그 자체의 결론을 중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류의 역사 연구는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것을 그 주된 임무로 하여 역사가의 주관이나 의식을 일체 배제하고 과거의 어떤 사실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었는가를 몰가치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중구난방의 핵심이 없는 잡다한 사실들만 나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즉 개별적인 사실의 추구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잘못하면 인간부재의 역사, 민족부재의 역사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대의 시대 정신이나 현재적 요구가 반영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특히 어떤 이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함으로써 무사관(無史觀)의 역사관을 주장한 셈이 된다. 민족의 현재적 요구가 투영된 사관의 결여, 이것이 실증사학이 가지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왜냐하면 무릇 역사란 번쇠(煩쇠)한 고증과 쇄잡한 언행록이 아닐 뿐 아니라 민족과 아픔을 같이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은 역사의 피안 속으로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하에서 주류를 이루었고,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사학계에 절대적으로 군림했던 이 실증사학이 민족의 현재적 요구인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외면한 채 때로는 식민사학과 궤도를 같이 했던 민족부재의 측면은 마땅히 준엄한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통일과 웅비를 향한 겨레의 역사〉 P.31 역사를 보는 눈)

이륙하기 위한 발판은 발판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이 된다. 이제는 도약을 이룩하기 위한 추진력이 필요할 때이다. 경제는 도약을 한 후 정상비행을 시작할 찰나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외양적 규모적 경제를 말함) 정치 사회 문화 분야 뿐만 아니라 여기서 다루는 사학도 새로운 사관이라는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에 나온 〈철학적 민족주의, 동양학 이렇게 한다〉라는 안원전(安原田)씨의 저서는 이에 대한 시의적절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조리 있게 설파한 젊은 석학의 혜안에 시원스럽고 확 트인 대기를 숨쉬는 것 같다. 흐뭇하고 통쾌함에 체증이 확 깔아 앉는다. 그의 저서를 체(體)로 이때까지 수차에 걸친 필자의 한풀이는 감히 용(用)으로 보고 싶다. 여기서 ‘무엇을 하자는 사관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들 책을 읽어보고 이때까지의 필자의 연재를 읽었다면 어느 정도 판단이 서리라 믿는다.
현재 한국 사학계에는 실증이라는 과학주의로 분장하는 낡은 왜식 식민사관(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왜식사관에 물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연히 식민사관에 동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학풍의 소지자들)과, 역사철학과 과학적 방식을 동원하여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는 입체적 종합적 조형사관인 재야의 민족사관, 그리고 왕조사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는 민중사관(사회경제사학과의 연관성은 미 검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측의 난데없는 기독교사관이 들고 나와 쐐기 역할을 하려 들고 있다.
기독교사관에 대해서는 차후에 집중적으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잠시 사회경제사학에 대하여 인용문을 통하여 알아봄으로써 민중사학을 측방 관측해 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사실 필자도 요즘 많이 출판되고 있는 민중사학을 사회경제사학으로 대비하는 것은 위험부담을 느끼고 있으나, 왕조의 흥망성쇠와 지배계층의 업적을 위주로 역사를 서술하고 모화적 기풍에 젖어 있었던 왕조사관에 대응하는 근대의 실학사관적, 현대의 민중적 민중사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감하고 있다.

다음 사회경제 사학은 한국의 근대 사학 중의 하나이며 일본 학자들이 한국의 경제 사회를 후진과 정체로 몰아붙이자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유물사관에 의거한 보편사의 논리를 적용하여 한국사도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법칙으로 발전해 왔다는 역사 발전의 일원론을 내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유물사관만이 보편적 원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또 설사 있다 하더라도 어느 지역,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그 지역 국가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외면하고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회경제 사학은 이른바 유물사관의 역사발전 5단계설을 우리의 역사에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왜 서구를 기준으로 하여 일원적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일원적이어야 할 당위성도, 타당한 근거도 없다. 우리 역사의 개별성을 토대로 하여 보편사가 대두되는 것은 순리(順理)이지만, 처음부터 소위 보편사의 법칙에 우리의 사료(史料)를 뜯어 맞추는 것은 명백히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어떤 결론을 먼저 내려 놓고 그 결론에 맞추어서 사료를 조립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육본발행 〈통일과 웅비를 향한 겨레의 역사〉p.31∼32 역사를 보는 눈)

이제 역사학의 낯익은 한 방법론인 실증사학은 요즘 대두되고 있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바람이 불고 있듯이 변신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허황보다는 과학’이라는 경고적 요소는 수렴한다 하더라도 명석해야 할 진보적 학자의 소양을 의심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관은 역사사고(歷史思考)를 위한 ‘임시 작업대’이며 자료의 수집이 증가되고 진전됨에 따라 쉽사리 보완과 수정을 허용하는 가소성(可塑性)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관이 절대적이며 신성불가침이라고 고집될 때 그것은 이미 역사철학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광적인 선전구호로 타락하고 마는 것이다.
헤르더의 민족문화론이나 슈펭글러의 문화사론이 히틀러의 정치적 독재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된 것은 사관이란 이름을 붙인 ‘역사의 도굴행위’에 불과한 것이다.(차하순 편 〈史觀이란 무엇인가〉 p.33)

실증적인 사실의 나열에만 바빴지 개개의 사실 위에서 일반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작업에 큰 의욕을 나타내지 못했던 실증사학자들의 한계를 뛰어넘은 용기는 바로 보지 못하고 독일식 학자들의 탈선만 거론하는 이들 학자들의 적반하장격 편견이 못내 아쉬울 뿐 아니라, 많은 현역 사학자들이야말로 가소성을 가져야 할 것이나 그들 스스로 그렇게 주장해 놓고서는 그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으며 민족사관을 들고 나오면 어찌하여 히틀러를 보필하는 식의 역사 도굴행위에 속하는 것처럼 몰아 붙이기나 하고 그들 자신들이야말로 무의식중에 진정 못 되 먹은 역사 도굴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공존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푸른 대리석다마(Blue marble)라고 불리우는 지구의 모습을 보름달 보듯이 육안으로 쳐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일일생활권의 지구촌시대로서 세계주의(Cosmopolitanism)라는 피상적인 현상에 감염되어 혼돈하는 것 아닌가 한다. 앞으로 세계는 각 단위 민족의 대동적 조화세계이지 지구촌이라 하여 민족을 기초로 하지 않고 아예 민족을 무시하고 뛰어 넘은 세계주의는 결코 바랄 수 없다. 영·미·호·캐나다의 앵글로색슨족이나 독일의 게르만족이나, 프랑스의 라틴족, 러시아의 슬라브족,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대족, 지나족이나 일본민족이 민족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민족주의와 민족문화를 오히려 세계화(Pax-) 해가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배달민족주의와 그 역사철학관을 강화하고 확대하여 세계화(Pax-koreana)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류애로서 공존공영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금일의 세계는 상식은 국제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으나 개성은 자기화 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짜장이나 우동이나 햄버거에 상습화 된 국제 식도락가이기도 하지만 고유의 김치나 된장 고추장 등 발효음식과 쌀밥과 불고기, 시원하고 담백한 국수 등 전래의 한식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긴다. 역사관도 마찬가지다. 시류에 따라 유행되는 외래의 사관이나 학문 연구방법을 무턱대고 배척할 것 없이 흡수하여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배달민족 전래의 민속, 신앙, 고유철학이 그 속에 융해되어 내려오고 있는 민족사가 있었고 그 민족사를 우리 나름대로 바라보는 역사관 철학관이 있었던 것이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필자 자신도 아직 완전히 자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주의 민족사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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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남자다운 것이 진정한 남녀평등이요 자유이듯이 한국인은 한국인답게 삼시랑 풍습 믿고 일본인은 일본인답게 일본 신도 믿고 유대인은 유대인답게 유대교를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아프리카 흑인은 흑인답게 살고 백인은 백인답게 생각하며 행동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지구촌 인류가 되는 것이지 국제화라 하여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어느 특정 세계화 유행수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협조하고 조화함으로써 모두가 제값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화다. 지구촌의 새 문화를 수립하는데 있어서 그 소재를 모든 민족이 제각기 자기 문화를 가지고 있는 데서 구해야 한다.
화단이 여러 가지 꽃들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며 합창의 요체는 다른 목청을 인정하는데 있듯이 가장 독특하면서도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보고 단군 믿으라(단군이라는 신앙대신에 그 사상인 3·1철학을 일깨워 주고 홍보해야 하지만) 공자나 석가 믿으라 하면 잘 안되듯이 우리에게 왜식사관 중화사관 서양기독교사관을 주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상식의 국제화 개성의 자기화를 개방과 폐쇄로 착각하여 민족사관을 주장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국제화 추세에 어긋나는 폐쇄적 국수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작태야말로 얼마나 편협되고 경망한 사고방식인지 알게 될 것이다.
자기의 역사와 전통을 잃어버리거나 경시하고 국제화라는 이름의 시대풍조에 전부를 걸고 살아 갈 때 타락하게 되고 자기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대신 부정할 때에는 괴뢰일 뿐이며 허수아비일 뿐이다.

범세계적 자유민주제도의 물결이 고유의 민족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될 것이며 동시에 민족의 자존심을 고양시키려는 의욕이 지나쳐서 세계의 공동보조와 적대감을 형성해서도 안될 것이다.(박찬종선언 ① P.139)

오늘날 각 민족국가는 현실적으로 그들의 자화상 찾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미국의 흑인, 아메리카의 인디안 부족도 그들의 뿌리를 찾거나 원상회복을 부르짖고 있으며 고유한 습속과 전통을 완강히 지켜 내려오고 있다. 개방과 국수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이다. 칼날의 양면과 같다. 우리의 내면적 주류는 고유한 무교(巫敎)·선교(仙敎)의 정신과 인습으로 살아 왔으나 표면상으로는 석가나 공자나 예수를 열심히 믿어 왔고 또한 역사학계에서는 서양 실증사학에 숙달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피상적인 어느 종교의 교주나 신에 심취해 있기 보다는 그 종교의 정신인 자비나 인이나 박애를 클로즈업하듯이 실증이라는 학풍이 학계에서 하나의 아성적 교조가 되기보다는 그 실상인 과학적 학문방식을 채득함과 아울러 고유의 선가사관(仙家史觀)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인류 보편적 사상을 확산하여 자기화 내지 범 세계화로 보편화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한주의 민족사관의 진로라 할 수 있다. 이 사관은 과거의 사실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 사관에 의하여 역사와 철학을 사실대로 되새김으로써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을 성취할 수 있고 민족의 웅비는 물론 나아가서 인류 복리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을 정치사회적으로 한주의(하나주의, 통일교에서는 하나님주의라는 것이 있고 頭翼主義라는 것이 있지만)라 할 수 있는데 한주의로서 세계의 모든 Parts와 System이 정상가동 되도록 할 수 있다. 지금 정상으로 안되고 있는 것을 정상으로 되도록 하는 것이 한주의다. 다시 말하면 ‘한의 유신(維新)’으로 교육법 제1조 홍익인간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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