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던 뿌리역사, 역대천황들 존영으로 되살아나다
글쓴이: 지천태 메일메시지무선메시지송금하기
날짜:2002/11/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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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에서 ‘단군의 힘, 통일의 그날까지’라는 주제로 <한국 105대 천황존영展>이 열렸다. 이 초상화전을 연 김산호(金珊瑚) 화백은 회화극본민족사인 『대쥬신제국사』(전5권. 1996년)를 펴내어 그림으로써 고대사 복원을 시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7대 환인천제, 18대 환웅천황, 47대 단군을 비롯하여 역대 왕조의 태조 등 105명의 천황 초상화 125점을 그려서 전시했다. 잃어버린 상고사를 역대 천황들의 초상화로 되살려 낸 역사적인 현장으로 찾아가 보았다.

105명 천황들의 생생한 모습이 전시된 곳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뿐이니라.”

일제시대 민족사학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였던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이 같은 절규처럼, 우리 한민족의 장대한 ‘역사’가 다시 한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절대 과제라 할 수 있는 ‘상고사(上古史) 복원’. 사대주의 사학자들,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날조된 우리 상고시대의 위대한 역사가 책이나 논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에서 열렸던 <한국 105대 천황존영전>이 그것이다.

1959년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한국 최초의 공상과학 만화 시리즈를 탄생시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가 김산호(62) 가 이번에 ‘단군의 힘, 통일의 그날까지’라는 주제로 역사책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우리 선조들을 존영으로써 복원해냈다.

초대 안파견(安巴堅) 환인천제를 시작으로 7대 환인천제, 18대 환웅천황, 47대 단군 그리고 부여의 해모수 단군에서 고구려, 대진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각 시대별 태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 순종황제, 그리고 역사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몇 분의 천황까지 총 105명 천황의 모습을 담은 작품 125점을 전시했다.

105분의 천황 존영이 전시된 곳으로 찾아가 이 힘든 작업을 해낸 김산호 화백을 직접 만나보았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 ‘우리 민족의 정통 역사를 살려내는 것’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과연 그 많은 분들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무척이나 컸다. 전해 내려오는 초상화는커녕, 삼성조(三聖祖: 환인·환웅·단군) 시대의 경우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기록조차 찾아볼 수 없는 분들인데 과연 어떻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상상과 영감으로만 그려냈을 터인데, 아무리 그래도 105분의 초상화가 한 사람의 손으로 가능할까. 그러면서 또한 역대 선조들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막상 행사장에서 본 우리 열성조들의 초상화는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유화로 그려진, 작게는 가로 폭이 74㎝에서 크게는 ‘치우천황군의 탁록대첩’의 경우 폭이 5m가 넘는 것까지, 그것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바로 생생한 역사의 현장었다.

 

 

 




각각의 그림 한점 한점에서, 과연 이 분들이 동북아를 호령했던, 아니 현 인류사의 포문을 열었던 우리 선조들이구나 하는 자랑스러움과 그 기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김산호 화백의 말로도 이 곳을 둘러본 학생들이나 시민들도 이 초상화를 보고 나면 상고시대에 이러한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 계셨다는 것을 자연스레 믿게 되고, 나아가 그러면 이 분들이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에 관심이 모아진다는 것이다.

60줄을 넘어선 김산호 화백이 장장 6년 동안에 걸쳐 완성한 이 초상화들은 역사적으로 남을 만한 참으로 놀라운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백’이라기보다 ‘사학자’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고, 본인 스스로도 ‘사학자’이기를 자처하는 김산호 화백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신념은 남달랐다. 실제로 김산호 화백은 얼마 전까지 중국에 있는 발해대학에서 ‘동이사(東夷史)연구소’에서 소장 겸 주임교수직을 맡아 활동을 했었다.

동이사연구소는 진실된 역사의 실체를 복원하여 한국정사(韓國正史)를 저본으로 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편찬하기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몽골, 소련, 북한 등지에서 온 해외거주 동포학자 15명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구소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의 감시와 압박이 심하여 김화백은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지금은 그 연구소를 한국의 여주에 태천단진소도(太天壇辰蘇塗)를 건립하여 그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추진중에 있다.

해외에 있을 때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하는 김화백은 외국에 있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바로 ‘우리민족의 정통 역사를 살려내는 것’이라는 걸 통감했다고 한다.

“국민을 결집시키는 힘은 역사적인 사건이 동기가 됩니다. 월드컵 때 전 국민이 들고 응원했던 것이 바로 치우천황 깃발이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역사에 대한 편견,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치우천황이 그려진 깃발을 마음껏 흔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작은 토끼가 아니라, 동아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거대한 호랑이였다!


김산호 화백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업차 들렀던 중국 방문이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 만화를 그리다가 미국에 건너가서 한때 사업을 했다. 그러다 사업차 중국을 방문했는데 만리장성에서 그곳을 안내했던 사람으로부터 “옛날 같으면 이 장성밖부터는 벌써 선생님의 나라가 아니었겠소?”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우리 역사에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알고 잃어버린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중국, 미국, 일본, 대만 등지를 오가며 수없이 많은 역사 사료와 논문, 책들을 파헤치고 모아서 엮어본 우리 역사는 지금까지 부끄럽기만 했던 한반도의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아니라, 동아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거대한 호랑이였다. 그렇게 숨겨진 역사의 실체를 복원하여 10년간의 방대한 작업 끝에 펴낸 것이 회화극본민족사인 『대쥬신제국사』(전5권. 1996년)였다. 그 책을 펴내면서 김산호 화백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리려고 『대쥬신제국사』를 썼다. 작가의 사명은 역사를 일반대중에게 쉽게 접하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화백이 지금의 천황들의 존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였다. 처음엔 작업을 서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 하여금 이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1999년 가을, 전국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단군상 파괴’라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천동지할 패악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일은 너무도 큰 충격을 던져주었고, 하루빨리 이 작업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급박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만사를 제쳐놓고 여기에만 몰두했다.

중국과 용인에 작업실을 두고 중국대륙을 몇번이나 둘러보았는지 모른다. 국내보다는 만주에 모든 자료들이 다 있기에 그곳에서 자료도 찾고 직접 현장을 발로 밟고 흙을 만져봐야 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역사를 찾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의 거대한 함성이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치우천황군의 탁록대첩’에 그려진 탁록 일대는 수도 없이 둘러보았다. 그러하기에 그 그림 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기운만으로도 아시아 대륙을 뒤흔들었던 우리 천황들의 살아 있는 역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역사서는 창작이란 없다. 고대사 자료들을 ‘위서’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기존의 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나 『단기고사』 등의 역사서들을 위서(僞書)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대해 김산호 화백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역사든 다 그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역사서를 씁니다. 역사책 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어차피 작가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누가 어떤 시대에 어떤 상황 속에서 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중국을 사대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고,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를 이 나라에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은 잘라내고 변형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주 기형적인 역사책이 쓰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책을 정리할 때 그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역사서는 창작이란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마찬가지로 『환단고기』나 『단기고사』 같은 것도 본래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엮은 것입니다. 간혹 거기에 사실과 좀 다른 내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역사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거죠.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를 ‘위서’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학계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환단고기』나 『단기고사』를 위서라고 얘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과학적 실증을 근거로 삼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물이 어디에서 발견되었을 때, 단순히 어느 시대의 물건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 장소에서 그 유물이 발견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죠.

예를 들어, 한무제가 평양까지 점령하여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면, 신(新, A.D.8∼24)나라의 화폐나 관인 같은 것이 평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면 김알지의 일족이 신나라에 협력하여 권력을 잡았다가 15년만에 망해서 평양으로 대거 도망을 오게 됩니다. 도망올 때 가지고 온 것이 돈이나 귀중품들이죠. 그래서 그러한 유물이 평양에서 발견된 거지, 신나라 때 한무제가 평양을 점령했다는 얘기는 아닌 것입니다. 그처럼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내용이 엄청나게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측 기록, 그리고 반대측 기록들을 다 비교해서 봅니다. 한쪽 내용만 볼 수는 없는 거죠. 그렇게 모든 기록들을 비교 검토해보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위서라고 주장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기록에 현대적인 용어가 등장하고, 또 어떤 사건은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거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용어는 그 역사서를 쓴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없는 사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역사책에도 부분적으로 그런 내용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든가 하는 내용도 사실과 다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또 김부식은 한정된 자료만 가지고 역사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의 우리는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연구하고 검토합니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다 모아놓고 보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부분까지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거기서 역사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일제와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

김산호 화백은 또 일제시대에 일본인들과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우리 역사가 철저히 날조된 사실을 성토했다.

“일본이 식민시대 우리 나라에 와서 했던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종황제가 황제들이 즉위식을 올렸던 원구단을 허물어 버리는 작업입니다. 원구단이 있는 것은 이 나라에 천자(天子)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자기들의 천황과 동격이 되기 때문에 허물지 않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원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을 세워버렸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한국인들의 구심점을 없애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구심점으로 삼는 것이 바로 ‘단군’이예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단군의 자손이라는 걸 잘라 버리면 그들의 구심점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들이 단군에 대한 기록들을 다 불사르고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어용학자들을 내세워서 ‘조선사편수회’를 설립하고 우리 단군 성조들을 신화로 돌려버리고 우리 역사를 축소하는 장난질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나서도 한국역사를 일본에서 일본사람들의 시각에서 배우고 온 경성제대나 와세다대 출신들이 그걸 정사(正史)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게 현 국정교과서입니다.
현재까지는 정말 우리의 진짜 정사(正史)는 말도 못 꺼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 복원을 위해 김산호 화백은 ‘태천단(太天檀)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거기에 이번에 그린 이 존영화(尊影畵)들을 영구보존하고 전시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곳에 태학교(대학교) 태학원(대학원)을 만들어 우리의 바른 역사를 가르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영감으로 그려진 초상화들

전시장을 둘러보면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들이 그냥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그려질 것 같지 않았다. 분명 큰 영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산호 화백의 대답은 역시 그러했다.

“그림을 그릴 때 영감이 없으면 그림을 못 그려요. 상이 떠오를 때까지는 안 그려집니다. 그래서 어떤 건 한달 넘게 걸리는 것도 있죠. 광개토대왕을 그리는데, 노인상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젊은 모습인 거예요. 그리고 치우천황처럼 영웅적이고 무인(武人)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는데 실제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의외로 문인(文人)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거죠. 억지로 그려지는 게 아니니까요. 허허”

천상의 열성조들이 그에게 알음귀를 열어준 것이 아닐까. 신도세계와 인간세계의 합작으로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새 역사를 열어갈 우리 민족

“이제 역사의 패러다임은 바뀔 것입니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는 기존 식민론자들의 모습은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21세기에 한국의 기운은 바뀔 것입니다.”

김화백의 이 말처럼 원시(原始)로 반본(返本)하는 우주의 가을을 맞이하여 이제는 정말로 우리의 뿌리역사를 되찾아야 할 때이다.

사오미(巳午未)는 천지의 대광명이 가장 환하게 비치는 천지의 시간대다. 우주 참하나님의 진리가 이 대광명 속에서 환하게 드러날 때, 인류역사의 여명기에 동아시아 대륙을 풍미했던 대동이(大東夷)민족의 그 웅대한 역사 또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인류문화를 열었던 우리 민족이 이제 선천역사를 매듭짓고 다시금 인류의 새역사를 여는 천지대업의 주인공임을 세상이 알게 되리라.

일제강점기 때 일본 관변학자들은,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B.C. 108년)시킨 후 낙랑군을 설치함으로써, 대동강 일대에 중국계 유물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적 가운데 전한시대의 것은 단 한 점도 없고 신나라의 화폐인 화천(貨泉) 몇 점과 후한 광무제 이후의 것들이 있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B.C. 238년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요서지역의 유민들이 대동강 일대로 건너가 낙랑국을 세웠고(B.C. 195년) 원래 자리(요서지역)에는 위만조선이 세워졌는데(B.C. 194년) 전한의 무제가 우거왕의 위만조선을 멸한(B.C. 108년) 뒤 그 자리에 낙랑군 등을 설치하고 후한시대인 A.D. 44년 광무제가 바다 건너 대동강일대를 점령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요녕성 금서시(錦西市) 일대에서 발굴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등 출토품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즉 당시 낙랑국은 고구려 대무신왕 때 정복되어 지배되고 있었는데 후한 광무제가 낙랑국 유민들을 도와 낙랑국을 재건시킨 것이다. 이로부터 대동강 일대에 중국계 유물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산호 화백은 김알지 일족이 대동강 일대로 건너왔다고 보고 있다. 김알지 일족이 이동한 시점으로 볼 때 일리가 있으나 아무래도 김씨 일족은 둘로 분리되어 곧바로 지금의 경남지역으로 들어가 김수로왕은 가야를 건국하고 김알지는 신라로 들어가 귀족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합리적일 것 같다.


김산호 화백은 ‘桓’을 ‘한’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본 월간『개벽』지의 편집방향에 따라, 김산호 화백의 말 중 ‘한’을 ‘桓’으로 바꿔 표기했음을 밝혀둔다.(예: ‘한단고기’를 ‘환단고기’로 표기)
환(桓)은 한(韓)과 발음과 뜻에 차이가 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의하면 하늘로부터의 광명을 환(桓: 天一)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檀: 地一)이라 한다. 즉 환단(桓檀)은 천지의 광명정신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韓: 太一)은 크다(大)의 뜻으로 천지광명정신을 계승한 역사의 주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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