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三韓)에 대하여

삼한에는 前三韓(北三韓)과 後三韓(南三韓) 및 중마한(中馬韓)이 있었다. 

 

                                                     

삼한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고조선의 준왕이 내려와 세운 나라, 혹은 고조선과 별개의 나라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삼한은 삼한 역사의 전부가 아니다. 삼한 이전에 또 삼한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조선의 삼한이였다.

고조선은 나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렸는데 이것을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 불렀다.
한반도와 만주, 요서의 광대한 땅을 강역으로 삼았던 삼한 고조선은 서기전 238년 북부여 해모수 단군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서기전 194년에 잔여 세력이 한반도 남단에서 삼한을 다시 재건하는데 이것을 남삼한 또는 이 시기를 중마한(中馬韓)이라 한다.

이 중요한 사실을 처음 발견한 분은 일제시대의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었다.
그리고 고조선의 삼한을 기록한 유일한 문헌은
환단고기이다. 고조선사와 고조선 망국 이후를 이해하는 열쇠는 삼한으로서 다음 글을 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의 통치제도
지금까지는 단군조선의 강역과 도읍에 대해서 장황하게 알아 보았습니다. 이제는 통치제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단군왕검께서는 조선을 세우신 후 삼신일체(三神一體) ‘한’사상에 따라서 나라를 세 임금, 곧 삼한(三汗→三韓)으로 나누어 분봉(分封)통치하였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신 또는 진 임금, 곧 진한(辰韓)으로, 동 아리수, 곧 압록강 이남 반도일대를 마한〔馬韓, 말한 또는 막한(莫韓)〕으로, 서부 만주와 동남부 몽고 및 서토(西土), 곧 중국 일대를 번한〔番韓 또는 변한(弁韓)〕등 세 임금으로 나누어 거대한 지역을 간접 통치를 한 것입니다.

■ 각 한(韓) 밑에 추방사회(酋邦社會) 군장(君長)을 통해 지배 : 부여·옥저·예·맥·낙랑·현도·진번·임둔·시라·고리(고구려)…조선등, 이 가운데 조선이 가장 강력한 추방 국가였음

그리하여 세임금, 곧 삼한이 생겼으며 단제(檀帝:檀君)께서는 직접 진한(辰汗→辰韓)의 임금이 되어서 번한과 말한 두 임금을 부왕(副王)으로 두고 다스렸습니다. 그렇게 되다가 1000년후에 22대 색불루 단군시에(BC 1280년경) 번한(番汗→番韓)으로 서우여(徐于餘:號 奇)를 분봉할 즈음 제도를 고쳐서 아예 각기 땅 이름을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부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통치권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번한 임금들의 땅인 번조선이 강성할 때에는 그 영토가 양자강 일대로부터 감숙성, 영하성, 산해관까지 였으며, 전세가 쇠약했을때에는 패수(백강 또는 난하)로부터 서부 만주까지 줄어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 삼한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나중에 우리나라 중·남부에 삼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箕子, 奇子)라는 말이 나온 것은, 주(周)나라에 의하여 은(殷)나라(東夷族의 나라였음)가 망하자 은(殷)왕실의 후손 중에 한 소집단이 하남성으로부터 북경지역으로 망명하였는데(BC 1300년경), 이 지역은 고조선의 서쪽 땅인 번한이 다스리는 땅이었습니다. 그 망명온 집단의 후손 중에 고조선 왕실로부터 기(箕 또는 奇)라는 지역의 자(子)라는 작위(爵位)를 받아 변경지역의 제후가 되어 ‘기자’라는 일반 호칭으로 불린 자가 있었는데, 그들 중에 기준(箕準:기자의 한사람)이라는 자가 바로 번조선의 마지막 왕입니다. 이 때가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 경 입니다. 그도 은 왕실의 후손이므로 같은 동이족으로서 조선사람입니다.

한고조(前漢 高祖: 劉邦)가 사망한 기원전 196년에 위만(衛滿)이라는 사기꾼이, 또 망명을 와서 번왕 준의 허가를 받고 살다가 이주민들과 토착민들을 규합하여 기준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자 정권이나 위만 정권의 성립은, 고조선 서부 변방의 한 사태로써 고조선의 멸망을 뜻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사는 고조선으로부터 기자조선-위만조선의 계통도 아니며, 위만조선이 우리 민족사의 대통(大統)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또 고조선이 현 평양에 도읍하여 그 강역이 현재의 요하까지만 미친것도 아닙니다.

기자가 위만에게 정권을 탈취당하므로서 번조선이 와해되어 고조선의 서쪽 관경(管境)은 대능하까지 줄어들었습니다. 그후 BC 108년 전한의 공격으로 위만이 멸망하고 그 지역에 한의 4군이 설치되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실제는 조선인에 의한 자치 4군으로써, 위만의 압제로부터 조선인 주권의 회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내용은 그렇고 형식적으로는 이때 이미 고조선 왕실이 통치력을 상실하여, 예하 제후국들이 열국으로 분립할 때여서 한의 통치력이 미쳤던 것으로 보아야겠습니다. 한단고기에는, 이때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北夫餘)가 난하와 대능하일대 곧 당시의 요동일대를 장악하고 한구(漢寇)를 물리치는 기록이 무수히 나옵니다.
(한역사 한사상  제1부  '대륙에 웅비한 고조선- 일제식민사관의 희생물' 분장에서)
 

한반도는 고조선 통치제도상 이때까지도 막조선, 곧 마한(馬韓)임금의 나라였는데, 북쪽 동만주 지역의 진국인(辰國人:진조선인)과 서쪽 변조선인이 남하(南下)하면서 이전의 나라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와 반도 안에 진조선, 변조선이 그대로 재현 되었습니다〔이 시기의 막조선을 일명 중마한(中馬韓)이라고 부르고 중마한의 땅인 소백산 넘어 외진 곳, 중마한이 통치하기 어려운 곳에 진한 임금과 변한 임금의 유이민들이 멀리 내려와 땅을 받아 수도로 정하고 나름대로 나라이름을 정하여 중마한의 다스림을 받았음〕, 동시에 북방의 풍운(風雲)이 잦은 관계로 말조선(馬·莫朝鮮)도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朝鮮)이란 이름이 역대 지나(支那) 제왕(帝王)들의 칼 앞에서 빛나던 이름으로 ‘외국인이 시기하는 바라’하여, 드디어 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옛날 왕호(王號)로 쓰던 한(汗→韓)을 써서 마한·진한·변한이라 한것입니다. 이러한 과도기·혼란기 내지 공백기에 들어온 번왕(番王) 기준(箕準)도, 한씨 왕(韓氏王)만 아는 국인(國人)들의 취향에 맞추어 한씨(韓氏)로 개성(改姓)하게 된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왕실은 통치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AD 3세기까지 청천강 유역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붕괴와 더불어 일어난 열국시대 전개 이후에 삼국으로 정립한 고구려·신라·백제는 모두 고조선의 후계 세력이었으며, 따라서 동일한 민족이라는 의식은 반도 남부에까지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라는 진한지역에서, 백제는 마한지역에서 성장하였고, 고구려는 옛 마한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 신라·백제가 건국되기 전에 반도 남쪽지역을 지배했던 남만주 부여족 출신의 진왕(辰王)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대륙의 진계(辰系)와 번계(番系)가 세운 변한인(弁韓人)은 반도 남단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일본 구주 북부와 오사카 지역(幾內)으로 이주(移住)하여(AD 4세기 전후까지) 연합세력을 형성하였음. 이러한 大陸系의 前後 이주민들이 일본 민족과 일본국가의 주류가 되므로서 일본의 부여인 기마민족 조상설(扶餘人 騎馬民族 祖上說)이 나오게 된 것임.
(한역사 한사상  제1부  '3한과 3국- 일본 민족과 역사의 뿌리' 분장에서)


 
한얼이 한울(온 누리)에 대하여 한임·한웅·한검의 3위1신이듯이, 한배검이 사람에 대하여 아버지·스승·임금의 3위 1체이었습니다. 이것을 삼일원리(三一原理)라 하는데 한얼·3신신앙이 지배하던 고조선에서 정치제도도 이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신한(辰韓)·말한(馬韓)·불한(發韓·弁韓)으로 세 임금을 세워, 단제(檀帝·檀君)께서 신한, 곧 대왕(大王)이 되시고 마한, 변한이 좌우의 부왕(副王)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한(단제)께서 변한의 도읍에 가서 계시면 변한이 신한의 도읍에 가서 자리를 지켜 주고, 마한의 도읍에 가 계시면 마한이 신한의 도읍에 가서 자리를 지켜주기도 하였습니다【 고려시대까지도 임금이 개성 평양 경주 3곳에 4개월씩 순주(巡駐)하였음】.

■ 中央에는 東·西·南·北· 中 五部에 五加가 있어서 五個 國務大臣, 신가가 五가의 首位, 전시에는 中前後左右의 五軍, 신가가 中軍大元首, 기타 4가가 4元首로 出戰, 윷판이 五가의 出陳圖와 같음. 刀(돗가), 介(개가), 乞(신가), 兪(소가), 毛(말가)

이와 같이 3신사상에 입각하여 3한·3경(京)·3조선이 있었는데, 우리의 본성(本姓)인 3신사상이 강할 때는 나라가 흥했고, 3신사상이 파탄되면 나라도 망했던 것입니다. 신라도 박혁거세(밝-갖-한)는 아버지요, 둘째 남해차차웅(次次雄==스승)은 스승이요, 셋째 유리이사금(尼師今=잇금=임금)은 임금으로서 부사군(父師君), 곧 3신사상입니다. 이를 표로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역사 한사상  제1부  '한사상- 태평양 시대를  주도하고 세계를 구원할 사상' 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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